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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함의 미학’으로 서구를 비튼 중남미 미술의 거장

홍천뉴스투데이편집국 | 기사입력 2015/05/05 [18:42]

‘뚱뚱함의 미학’으로 서구를 비튼 중남미 미술의 거장

홍천뉴스투데이편집국 | 입력 : 2015/05/05 [18:42]
라틴아메리카 미술은 미국과 서유럽의 모더니즘 경향의 미술과 다르게 혼혈문화의 특징을 반영한 독창성 있는 화풍을 추구한 화가들이 많다.
 
19세기 이후 전통과 현대, 야만과 문명이 혼종되며 라틴아메리카의 전통, 정체성, 문화, 예술이 비로소 라틴아메리카다운 미술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당시 많은 화가가 혼종의 시대에 어떤 예술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주목했다. 형식과 내용의 측면에서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그 중 인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시도를 제시한 화가들이 등장했다.
 
콜롬비아의 페르난도 보테로, 브라질의 타르실라 두 아마랄과 에밀리아노 디 카발칸디, 멕시코의 디에고 리베라, 베네수엘라의 에우랄리오 톨레도 토바르, 코스타리카의 막스 히메네스 우에테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콜롬비아 출신의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1932~)와 막스 히메네스(1900~1947)는 새로운 인체의 형태학을 제시하며 사회적 현상을 풍자한 화가로 꼽힌다.
 
보테로는 과거의 미술을 재해석하거나 새로운 시각에서 흥미롭게 풀어낸 화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루벤스, 얀반에이크, 벨라스케스 등 거장의 작품을 차용해 자신만의 형태미로 재해석해 대중적 인기와 국제적 명성을 동시에 얻은 인물이다.
 
보테로, <모나리자>
보테로, <모나리자>

그의 많은 작품 중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하루아침에 뚱뚱한 여인으로 바꿔버린 그림은 유명하다.
 
<모나리자>를 차용한 그림에서 보여지 듯 보테로 작품의 특징은 기법적 측면보다 인물을 기형적으로 표현한 형태학에 있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형태의 충만과 풍부함이 보테로가 추구하는 인물표현의 핵심이다. 히메네스 우에테 역시 과장된 인체표현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인물해석에는 차이가 있다. 보테로는 얼굴, 손, 발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데, 얼굴이나 인체의 특정부위를 지나치다 싶을 만큼 확대한 반면, 손과 발은 기형적이라 할 정도로 작게 표현한다.
 
이에 견주어 히메네스 우에테는 전체적으로 비만형에 가까운 형태를 추구했다. 보테로와 달리 오히려 손과 발이 지나치게 크다.
 
두 화가의 인체비례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접근은 작품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브래지어를 차는 여인>과 <창가의 여인>이란 작품을 보면 두 화가의 인물묘사 특징이 쉽게 파악된다. 두 작품 모두 여성의 신체에 대한 오랜 관념을 뒤흔든 그림이란 공통점이 있다.
 
현대여성은 대부분 팔등신, 완벽한 비율, 날씬한 몸매를 꿈꾼다. 그래서 다이어트는 여성이 정복해야할 하나의 지상목표가 된지 오래다. 날씬한 몸매를 위해 각종 다이어트 식품과 운동 등이 여성을 유혹하는 시대이다.
 
보테로, <브래지어를 차는 여인>
보테로, <브래지어를 차는 여인>

이런 점에서 보면 보테로나 히메네스의 그림 속 여인은 현대여성이 꿈꾸는 여성상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있다.
 
예컨대 보테로의 작품 속 여인은 그냥 뚱뚱한 정도가 아니다. 과연 정상적 생활이 가능할까 의심이 들만큼 고도 비만이다. 그런데 정작 묘사된 인물들의 표정이나 모습을 보면 오히려 당당하다. 마치 풍만함이 아름다움의 요소인양 부끄러움이 없다.
 
<브래지어를 차는 여인>은 여성의 동작으로 미루어 방금 침대에서 빠져 나온 듯(반대로 침대 속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모습으로 봐도 흥미롭다)하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한없이 작아 보이는 남자가 침대 위에서 평온한 얼굴로 누워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히메네스의 <창가의 여인>은 나른한 오후, 뚱뚱한 백인여성이 창밖을 우두커니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막스 히메네스, <우에테 창가의 여인>
막스 히메네스, <창가의 여인>

그런데 초점 잃은 시선 때문인지 분위기가 몽롱하다. 전체적으로 따뜻한 색조가 지배하면서 몽롱한 분위기를 한층 짙게 만든다.
 
두 화가의 작품에서 인물의 과장된 비례표현과 더불어 주목할 것은 그림에 담긴 의미다. 두 사람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풍자적이며 사회비판적 요소가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정작 보테로는 자신의 작품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일부 시각에서 캐리커처 작가로 보는 것이나 풍자성 회화로 보는 것에 반대한다.
 
자신의 초상화는 인물을 왜곡하거나 의도적으로 우스꽝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며, 커다란 형태와 감각적인 볼륨은 다른 화가들이 형태를 기형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그림을 그리는 몰입과정에서 형성된 결과물이라 강조한다.
 
독일 평론가 베르너 스피스가 “보테로의 풍만한 인체는 자코메티의 길고 얇은 형태처럼 단지 하나의 회화적 언어다”’라고 지적은 보테로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보테로의 그림은 군국주의자나 권력자를 비난하는 내용이 많다.
 
예컨대 <시인>을 보면 보테로가 인물표현에 담고자한 표현의지가 엿보인다. 오른 손에 담배, 왼손에는 책을 붙들고 먼 산을 응시하는 중절모자(중절모의 신사는 마그리트 작품에서 차용한 것임)의 남성은 부르주와의 전형이다.
 
루벤스와 보테로의 작품 비교.
루벤스와 보테로의 작품 비교.

여성보다 남성을 주요 비판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실제 남자를 경멸하고 여자에게는 관대했던 보테로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는 듯 보인다.
 
히메네스의 그림 역시 풍자, 아이러니와 패러디 등을 통해 혼란스러운 세상과 의미가 부재한 사회를 비판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비판의식과 시각은 당시 사회가 안고 있는 위기와 변혁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감정의 표현이다.
 
작품이 평론가나 대중에게 제작의도와 무관하게 평가되는 것은 예술의 숙명이다. 모든 예술작품이 화가가 원하는 대로 평가되었다면 미술사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두 화가의 과장된 비례의 인물상은 그리스 시대부터 남녀의 인체 비례를 기준처럼 유지해온 캐논을 전복시키는 형태학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신구상주의를 이끈 인체형상으로 작용했다. 
 
변종필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에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4.2)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 겸 편집위원, ANCI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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