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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위해서라면 박근혜,새누리스러운 짓도 서슴지 않겠다?

더민주를 내부에서 붕괴시키는 양비론적 결과지상주의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6/03/21 [08:03]

승리를 위해서라면 박근혜,새누리스러운 짓도 서슴지 않겠다?

더민주를 내부에서 붕괴시키는 양비론적 결과지상주의

서울의소리 | 입력 : 2016/03/21 [08:03]

 

정치철학만이 아니라 전통의 철학에서도 중도라는 것은 없습니다. 도리는 것은 우주와 세상, 삶에 대한 지극한 깨달음인데 어떻게 중간에 위치하는 깨달음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서양과 동양의 어떤 철학에도 중간지대의 깨달음이란 것은 없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나온 이후로 중간이라는 시공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밝혀졌습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위대한 철학자나 성인의 반열에 오른 분들이 중용과 중도를 철저하게 구분한 것도 양비론의 위험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제거하는 명분을 위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라는 <하여가>를 읊은 것도, 어느 쪽에서든 이익만 취하면 그만인 것 아니냐는 양비론의 전형입니다. 

 

장자가 <변무편>에서 "물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길게 이어주면 괴로움이 따르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짧게 잘라 주면 슬픔이 따른다"고 말한 것도, <안간세편>에서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음의 쓰임은 알지만, 쓸모없음의 쓰임은 알지 못한다"다고 말한 것도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질타한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중용(中庸)의 용이 쓴다라는 뜻임에도 이것을 중도로 포장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행태를 숨기기 위함입니다. 

 

플라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면 자신보다 못한 자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한 것도, 단테가 《신곡》에서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에게 예약돼 있다고 말한 것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참사 같은 고통 앞에 중립을 취할 수 없다라고 말한 것도 중용을 중도로 호도한 채 양쪽에서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양비론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지심리학의 대가였던 레이코프가 정치철학에 중도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중개념를 제시한 것도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양비론이 신자유주의의 본질인 자유방임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바우만이 《모두스 비벤디에서 가진 자들의 이익을 무한대로 허용하고 지켜주기 위해 가지지 못한 자들을 생존선 이하로 추방하고 배제하는 제한된 기획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비판한 것도 양비론의 폐해가 극단에 이른 것이 신자유주의이기 때문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경찰이 학생을 연행하려면 처음에는 자신을, 다음에는 신부들을, 그 다음에는 수녀들을 넘어야 한다고 했던 것도, 김대중 대통령이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해서라도 행동하는 양심에 따르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고 했던 것도,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말했던 것도 승자의 편에 서서 이익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양비론을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동서고금의 위대한 철학자와 정치인들 중에 중도로 포장되기 일쑤인 양비론의 위험을 비판한 말들은 이것 말고도 수없이 많습니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명제와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라는 명제를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라는 명제와 동일시하면 이승만과 이명박도, 박정희와 박근혜도 비판할 수 없습니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써라라는 속담도 수단이 결과를 정당화하는 끝없는 보복의 악순환만 양산할 뿐입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새누리당스러운 짓도 서슴지 않겠다면 그 순간부터 새누리당의 일원이 되는 것이며, 김종인과 박영선이 김대중과 노무현의 자리를 꿰차도 상관없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극우의 철학이고 논리이지, 자유와 평등, 관용과 박애, 상생과 공존이라는 민주주의와 진보의 철학과 논리가 아닙니다.

 

셀프공천을 확인하고도 여전히 총선 승리만 외치는 자들이 모든 것을 망치고 있습니다. 친일부역자들이 멸공과 친미라는 가면을 쓴 채 이 땅의 특권층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도 언제나 승자의 편에 서서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양비론의 기회주의적 처신의 결과입니다.

 

SBS의 보도(지상파3사의 조중동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더민주, 판도 변화..김종인계-문재인계 부상>)를 인용해 김종인 비대위의 셀프공천마저 받아들이자는 궤변이 김대중과 노무현을 부관참시하는 것을 넘어 더민주와 문재인을 죽이고 있습니다.

 

늙은도령 : http://doitnow61.tistory.com/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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