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긴밭들 詩人 안원찬] 바코드를 긁는다

용석준 기자 | 기사입력 2022/11/14 [15:35]

[긴밭들 詩人 안원찬] 바코드를 긁는다

용석준 기자 | 입력 : 2022/11/14 [15:35]

 

바코드를 긁는다

 

구내식당에 들러 

시장기 채우려 바코드를 긁는다 

식사 때마다 마주치는 영양사 아가씨는 

나의 일상을 검색기처럼 꿰뚫고 있다

 

오늘은 한식 

옹기 뚝배기에 나온 우거지탕 

간밤에 숙취도 풀 겸 해서 

뚝배기째로 먹어 치우니 

뱃살 주름 펴지는 소리 요란하다

 

위장이 고장 났다는 처방전에 따라 

약 한 봉지 털어 넣고 

로열젤리 질겅질겅 씹는 퇴근길에 

집 근처 슈퍼마켓에 들러 

출근할 때 아내가 건네준 쪽지를 꺼내 든다 

비누 칫솔 시금치 달래 마늘 풋고추…… 

빠짐없이 챙긴 다음 계산대에서 

잊지 않고 바코드를 긁는다

 

아내의 칭찬을 뒤로한 채 

잠자리에 눕기 위해 

나는 본능처럼 아내의 가슴에 바코드를 긁는다 

이내 아내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그윽한 미소

 

공짜 없는 세상 

바코드가 있는 한 나의 하루는 안녕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