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목사들이여, 목사로 남고 싶거든 내려놓고 내려가라

자질이 부족한데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사고를 친다

임종석 | 기사입력 2018/04/26 [18:26]

목사들이여, 목사로 남고 싶거든 내려놓고 내려가라

자질이 부족한데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사고를 친다

임종석 | 입력 : 2018/04/26 [18:26]
성경정신이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다
 
언젠가도 글로 쓴 적이 있는데, 80년대 초 필자는 우리 정부의 파견으로 일본에 가 체류한 적이 있다. 재일 한국인의 민족교육과 민간외교가 목적이었다. 정부 파견에 의해 공무원 신분으로 갔으니 민간외교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 말이지만, 정식 외교는 재외공관의 외교관들이 하는 것이니, 그와 구별하기 위해 편의상 그리 부르는 것일 뿐이다.

어떻든 필자는 그때 어느 교포들이 모임에 참석하여 이런 내용의 스피치를 한 적이 있다.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사랑을 받듯이 한국인은 한국인다워야 인정을 받는다.’

지금 이런 말을 한다면 남자다운 것이 뭐며 여자다운 것은 또 뭐냐 할 사람이 많겠지만, 그때는 그래도 그 말이 통해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은 기독교인다워야 인정을 받고 목사는 목사다워야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다움과 목사다움은 다른가. 아니다. 목사는 교인들의 신앙을 지도하는 일이 본분이니, 신앙 면에서 라면 목사가 일반 교인들보다 못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분명해 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신앙, 신앙이라고들 하는데, 신앙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야 하나님을 믿는 것,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여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 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앙이다. 이를 흔히 예수를 믿는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믿음 좋은 신앙인이란 어떤 사람일까. 하나마나 한 말이지만 기독교인다운 기독교인이 아니겠는가. ‘말장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뭐 하자는 거야? 그래, 좋아. 그렇담 기독교인다운 기독교인은 어떤 사람인데?’ ‘성미가 급하기도 하시지. 한 마디로 말할 테니 잘 들어 봐…’ —기독교인다운 기독교인, 즉 믿음 좋은 신앙인이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다.

그런데 복음서 등에 나타난 그분의 행적만을 통해서는 그 ‘마음’을 구체적으로 알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구체적으로 자세히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성경정신’이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말도 된다.

성경이라면 교회에서 목사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목사라고 해서 신앙이 일반 교인들보다 나은 것만도 아니다. 성경지식이 신앙과 비례한다고는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교회의, 기독교의 비극은 여기에 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다 같이 구덩이에 빠진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목사라 해서 교인들 모두보다 신앙이 더 좋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상위에는 속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보라. 교회를 자기 소유물처럼 자식에게 물려주고, 성희롱에 성폭행까지 하는 자들의 신앙이 어떻게 상위에 속하겠는가. 성경이 읽어 지식을 얻기 위한 책이 아니라, 읽어 실천하는 진리의 경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마음의 돌비에 새겨야 하지 않을까 한다.
  
비계덩이는 근육이 될 수 없다
 
교회는 목사의 그릇 크기만큼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보라. 저들도 교회를 얼마나 크게 성장시켰는지를. 그런데 교회를 대형교회로까지 성장시켰는데도 왜 이렇게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미어지는 걸까. 덩치가 커져 성장인 줄 알았는데 비만증에 걸려 비계덩이가 몸집만 불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릇은 크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모양에 따라 내용물의 틀이 잡히기 때문이다. 저들의 잘못된 신앙이 교회를 잘못되게 틀을 잡은 것만 봐도 그렇지 아니한가. 비뚤어진 그릇은 작을수록 좋다. 커야 하는 것은 제 모양을 했을 경우이다.

하기야 하나님 일에 그릇의 크고 작음이 어디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는 바르면 바를수록 그만큼 큰 그릇이 된다. 그릇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도토리깍정이만도 못하다.

천지를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시키시는 것은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크고 많은 일을 하기보다 작고 적을지라도 바르게 일하기를 바라신다. 바른 일이 큰일이라는 말이다.

비계덩이가 불어 몸집이 커진 것을 비만증이라는 것도 모르고 교회가 성장했다면서 손뼉을 치며 거드름을 피우는 목사님들이 얼마나 많은가. 개척교회 시절에는 그래도 성경고부를 하며 겸손히 해 보려는 노력을 하는 시늉만이라도 했으나, 교인수가 늘어 재정이 나아지자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건물을 세워 가고, 그러는 세월에 따라 성경지식도 늘어가니 덩달아 기득권도 커지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그 기득권은 교계에서의 서열 상승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그러나 기독교는 기득권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까지도 내려놓는 종교이다. 어떤가. 그대의 교회는 교인들이 목사보다 기득권이 더 있는가. 아니다. 교회에는 그런 것이 아예 있어서는 안 된다. 있다면 목사든 일반 교인들이든 앞을 다투어 내려놓아야 한다. 뭐라고? 그런 교회는 없다고? 그래, 안다. 나도 안다. 그러니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닌가.

그리 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어렵다고 방치해 둔다면 기독교가 아니다.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줄이고, 덜어낼 수 있는 데까지 덜어내려 기도하며 노력만이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이고, 그래야 교회가 비만증에 걸린 것이 아닌 건강한 성장을 할 수 있다. 사회로부터 받는 비난의 손가락질을 칭송의 부러움으로 바꿀 수 있다.

기득권에 기대려는 경향이 있다면 목사로서 자격미달이다. 교인들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면 목사 될 자격이 없다. 그런데 자신을 그런 목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아니다. 스스로가 느끼지 못한 것일 뿐이다. 필자는 그렇지 않은 목사, 그렇지 않은 교회를 아직 본 적이 없다. 모두는 아마 그런 일에 대해 본격적으로는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 교회, 우리 기독교의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과제이다. 이 과제만 제대로 해결된다면 우리 교회, 우리 기독교는 눈부신 성장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에 지금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목사직은 기득권도 아니고 높은 위치도 아닌 사역상의 포지션일 뿐인데, 그 특성상 그리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적으로 틀리다고는 할 수 없는 말이다. 필자도 일정 부분 인정한다. 그러나 아전인수식이 아닌 객관적인 시선으로 응시해 보라. 자연스럽게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자질이 부족한데 중직을 차지하면 사고를 친다
 
무슨 일이고 하는 데에 있어 자격은 매우 중요하다. 자격증과는 다르다. 자격증이 없어도 능력만 있다면 뭣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능력 없이 뭔가를 했다가는 사고를 자초하게 된다. 교사 자격증이 없어도 실력과 자질만 있으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 요즘 유치원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는 아동학대는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질에 문제가 있어서이다. 실력 없는 어머니도 아이를 훌륭하게 길러 내는 것은 자질이 실력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의 입증이기도 하다.

능력 또는 실력이 자질의 범주에 포함되기도 하는데, 그러한 의미의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그에 해당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도 그렇고 기업의 총수도 그렇고 뭐든 다 그렇다.

대통령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차치하더라도, 대한항공을 보라. 자격 없는 자가 총수가 되어 자격 없는 마누라와 자식들을 감당 못할 자리에 앉히다 보니 여기가 곪고 저기가 터지지 않는가.

목사라고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들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그들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죄악 된 수많은 비리를 다들 알고 있으니 여기에 열거한다 해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덮어 두고 말자는 것은 아니다. 자질이 없으면 그만 두어야 한다는 것만은 강조하고 또 강조하여 말하고자 한다.

그러나 목회도 생업이라면 생업이라 못할 것도 없는 일인데. 그만 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대형교회 목사라면 모아놓은 것이 있을 테니 먹고 사는 일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지금까지 누려왔던 그 크고 많은 특혜들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어떻게 쉬운 일일 수 있겠는가. 필자라고 그것을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다. 알지만 그리해야 교회도 살고 목사 자신들도 사니까 하는 말이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보다 더 세속적이 되고 타락한 목사라 해도 살고 죽는 것이 영혼 아닌 육신에 대한 문제라고야 생각하겠는가.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죽을 만큼 힘들어도 자질이 부족하고 자격이 모자란 목사는 물러나야 한다.

물러나기가 죽기보다 더 어려운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말이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교인들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방법은 그 하나뿐 달리는 있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들에게는 어떠한 권리도 기득권도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에게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권리도 아니고 기득권도 아닌 의무뿐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천 된 우리는 있는 권한과 기득권까지도 내려놓아야 하는 가련한 종족이다. 그러나 그 가련함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보다도 더 아름다운 영광이 된다. 지게 된 의무가 날개가 되어 하늘을 나는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려가고 내려가다 보면 하늘로 올리어져 그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는 것이다.

이에 아니라 하지 마라. 아니라 한다면 그대는 비록 크리스천임이 틀림없다 해도 그 말 앞에 ‘진정한’이라는 수식어는 붙을 수 없는 사람이다.

끝으로 다시 말한다. 목사로 남고 싶거든 내려놓고 내려가라. 비록 그 실천에까지는 이르지 못할지라도 그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라도 해 보라. 그것이 목사로서 최소한의 자격이다。교인들도 다르지 않다. 진정한 크리스천이고자 한다면 그대 또한 내려놓고 내려가기를 바라라. 하늘나라에서의 상이 클 것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