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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나이가 있지만, 시에는 나이가 없다

27일(토)오전 11시 시상식 개최
공작산 생태숲 전국문예공모 대상 작품 소개

용석준 기자 | 기사입력 2021/11/25 [18:27]

시인은 나이가 있지만, 시에는 나이가 없다

27일(토)오전 11시 시상식 개최
공작산 생태숲 전국문예공모 대상 작품 소개

용석준 기자 | 입력 : 2021/11/25 [18:27]

▲     공작산 생태숲

 

 

(사)한국문인협회 홍천지부(지부장 안원찬 시인)는 27일(토) 오전11시 홍천미술관 2층 교육실에서 '제36회 홍천문학출판기념회 및 제11회 공작산 생태숲 전국 문예공모 시상식'이 개최된다.

 

이번 전국 문예공모전에는 410여편의 작품이 접수되어 일반부에 박정순(인천)씨가 청소년부에 김하은(춘천여고)양이, 어린이부에서는 문형빈(충주시) 어린이가 각각 부문별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다음은 한국문인협회 홍천지부장인 안원찬 시인의 인사말과 대상작품을 소개한다.

 

 

문학은 언어예술입니다. 문학이 언어를 표현매체로 사용하는 것은 문학을 음악, 미술 등의 다른 예술과 구분해 주는 특징입니다. 문학의 매체인 언어는 다른 예술의 매체와는 달리 직관적으로 지각할 수 없고, 인간사회의 문화적 산물로서 사회적 성격을 띱니다.

 

시인은 나이가 있지만, 시에는 나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시에 들어 있는 보석과 같은 시어들은 나이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하여야 합니다. 모든 시는 감각의 성찬을 차려놓아야 합니다. 순간적 이미지 포착으로도 충분히 한 편의 시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소재에 대한 시인의 장악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도를 깨우쳐 오도송(悟道頌)을 읊조리듯 말입니다. 이는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5월에 우리 문인협회 회원들의 역량으로 114편의 작품이 담긴 현수막으로 수타사 산소길에서 「제11회 야외 시화전」을, 40여 편을 패널형 액자로 제작해 홍천문화원 전시실에서 「제1회 실내 시화전」을, 그리고 「제11회 공작산 생태숲 문예축전 작품공모」로 전국 곳곳에서 410여 편의 응모작품이 접수되어, 심사하여, 발표하고, 2021년 11월 27일 시상을 앞두고 있습니다. 수상자 여러분께 우리 회원 모두의 뜨거운 마음을 모아 축하합니다. 

 

이번 『홍천문학 36집』, 눈에 넣기에 넉넉하고 풍요롭게 느껴집니다. 회원 모두 창작에 몰두하는 뜨거운 그 열정, 멈춤 없이 하늘이 깜짝깜짝 놀라는 도약이 되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수상자와 회원 여러분의 앞날에 행운이, 문운이 활짝 열리길 빌어 봅니다. 아울러 수상자의 가족, 축하해 주기 위하여 바쁘심에도 함께 해주신 내·외 여러분 건강하시고 가정에 행복이 늘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안원찬 시인(한국문인협회 홍천지회 회장) 

 

 

 

  © 상수리나무


 

■ 일반부 대상작

 

'참낭구와 비알'에 대한 소묘

 

88세 어머님의 생신상을 차린다. 예년엔 친인척과 지인들까지 모여 축하해드렸지만,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가족외식조차 불가능한 현실, 각각의 생활 여건 때문에 다섯 식구가 한자리에 앉는 것도 오랜만이다.

 

비린 걸 입에 대지 않으시는 어머니 식성을 고려해 채식 위주로 준비한 음식들을 그릇그릇 차려낸다. 산촌에서 나는 재료들 위주요, 그중에서 가장 공들인 게 도토리묵이다.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시기도 하고, 어릴 적부터 익혀둔 몇 가지 요리법과 손맛을 간직하고 있는 데다, 시대 흐름 따라가느라 젊은 층과 어른 대접 받는 세대 간에 호불호가 갈릴망정, 미각과 시각에 맞추려고 정성 다한 메뉴다.

 

도란도란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면서 그릇 하나씩 비우다 보니 문득 오래 잊고 있던 추억 자락이 빛바랜 흑백 영상처럼 재생된다. 

 

고향마을 앞산 자락은 ‘참낭구 비알’이다. ‘낭구’는 나무,‘ 비알’은 비탈의 지방어로 참나무들이 들어찬 비탈이란 뜻이다. 바람에 떨어져 흙 속에 묻혔거나, 다람쥐 건망증 덕분에 싹을 틔운 도토리들이 이루어놓은 울창한 숲 ,다른 나무를 내려다보듯 높이 자란 상수리나무와, 햇빛 골고루 받아보자고 상가지 흔드는 신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키 작아도 잎 넓은 떡갈나무들이 서로 의지한다.

 

‘닷섬낭구’는 높이 든 굵기든 가장 좌상 나무인데다, 도토리 다섯 가마니를 맺는다고 하여 그렇게 불렸다. 오랜 세월에 폭삭 늙어서 이제는 저 감당할 만큼의 열매만 맺는 나무를 대우해주려고 지어냈는지, 실제로 그런지 알 수 없는 노릇이나 과장하기 좋아하는 건, 옛날 어른들도 비슷했을 듯싶다. 다랑논조차 없어 쌀이 귀한 오지마을이지만 산에 기대어 살아가도록 이것저것 준비해두니 세상 이치란 얼마나 공평한지.

 

본디 고운 비단 자연 자락에 단풍빛깔 더 물들인 가을은 풍년들어 넉넉해진 산이 선심 베푸는 열매들을 주워 들여야 하는 계절이다.

 

도토리는 들판 내다보며 맺힌다고 했듯, 흉년이 들 것 같은 해에 더 많이 열려서 뭇 생명들을 살린다. 엔간해선 외지인 발길 닿지 않는 곳인데도 가을이면 동네사람들보다 먼저 낯선 도토리꾼들이 골짜기마다 희끗거린다. 열매를 더 많이 맺은 나무일수록 떡메나 돌덩이를 주워들고서라도 두들겨 팬다. 해를 거듭할수록 나무 등걸의 흉한 상처가 커지면서 겉은 덧나고 속은 썩어든다.

 

사람이 무섭고, 더 이상 골병들면 안 되겠다 싶은지 나무는 가진 걸 죄다 내주고, 채취꾼들은 사방에 내동댕이쳐진 도토리들을 손 바쁘게 주워 챙긴다. 때가 되고 다 여물면 어련히 알아서 떨어트려 줄 텐데 남한테 뺏길까 싶어 머리 검은 동물들이 하는 짓이다. 본토박이 누구 한 사람, 당당하게 나서 간섭하질 않으니 더 그러지 않나, 싶다. 청설모며 다람쥐, 먹성 좋은 멧돼지들과 나눠 먹어도 될 만큼 넉넉한 양이거늘 사람 간에 야박한 소리 주고받을 것까지야 없긴 하지.

 

그렇게 참나무 숲의 한철 도토리 거둠은 잔칫상 치우듯 끝난다. 집집마다 도토리 풍년이다. 극한의 떫고 쓴맛을 다 우려내고 식구들입에 넣기까지는 엄마의 숱한 손길이 필요하지만.

 

햇살조차 더디 가는 춘궁기에 쌀독이 바닥나면 엄만 녹말가루를 물에 풀어 무쇠솥에 안친다. 검불 쏘시개에 성냥을 그어대자 불꽃이 핀다. 솔가지에서 장작으로 옮겨붙은 불길이 아궁이 안팎을 활활 넘나든다.

 

엄마의 동선을 벗어나지 못한 채 걸리적거리던 나한테 부엌이 떠맡겨졌다. 잉걸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매운 연기와 더운 김을 쐬어가며 땔나무를 넣고, 눋지 않도록 나무 주걱으로 휘저으려니 이중 고생, 이윽고 솥단지 안의 묽은 갈물이 걸쭉하게 졸아든다.

 

엄마가 부엌과 가까운 채마 밭에다 키운 푸성귀며 양념거리를 골고루 챙겨온다. 봉숭아 여러 포기 에둘러 심은 장독대에서 간장을 떠다가 오이와 실파를 잘게 썰어 고춧가루 넣고 ,참기름을 쪼로록 따라서 만든 양념장 맛을 본다. 그리고 알맞게 졸아든 묵을 널찍한 그릇에 퍼 담아 식힌다.

 

늦은 점심상에 온 식구가 둘러앉았다. 살아 꿈틀대는 미꾸라지보다 더 매끈거리는 묵 가닥을 막내 입에부터 차례로 넣어준 엄마가 가장 나중에야 당신 묵사발을 후룩후룩 비운다. 짧은 창자만큼이나 묵배는 금방 꺼지지만 어쨌든 한 끼니를 잘 때웠다.

 

등 따습고 배만 든든하면 더 바랄 것 없이 평화로웠던 산골, 넘기 벅찬 보릿고개마다 사람의 끼니 걱정 덜어줄 뿐만 아니라, 산중 생명들에게 희망이던 소중한 열매, 세상이 좋아져서 직접 산엘 가지 않고도 성장기 시절의 추억이 응축된 먹을거리를 가족들 앞에 차려낼 수가 있구나.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친정엄마에서, 날이 다르게 쇠약해져 가는 시어머님으로 대상이 바뀌었을망정.

 

묵 가락을 어머님 입에 넣어드리다가 성치 않은 치아를 언뜻 보았다. 고부지간이라는 인연 맺고서 함께 사는지 39년, 그 사이에 참나무 등걸 같았고 단단하던 육신 곳곳 삭아버린 채, 오래 숨겨왔을 통증을 이제라도 알아챘으니 다행이다.

 

집에서 가까운 치과를 예약하였다. 어금니 필요 없을 만큼 야들야들한 도토리묵이나마 쉽게 드실 수 있도록.   

 

박정순(인천) 

 

 

  © 여름-매미



■ 청소년부 대상작

 

매미 

 

그 해 하늘은

얼마나 푸르렀던가.

 

발 디딜 틈 없는 세상에서

매미는 스스로를 순장했다.

세상의 가장자리는 씁쓸한 맛이 났다.

 

항상

제자리에 있었고

제 자리에 있었던 하늘을 찾아

다른 매미들처럼 작자 미상의 노래를 불렀다.

 

뾰족한 노랫말에 찔리는

나무를 모른체 하며,

다가오는 가을에 쫓기며

단풍에 물들 새라 노래했다.

 

개화하는 가을은

눈 먼 짐승처럼 조심스럽다.

그 짐승의 발걸음에서 도망치기엔

매미는 느렸다.

 

늦여름의 신기루처럼

매미는 새벽에 물들어 아침을 부른다.

 

7년, 그 흙 냄새 가득한 울음을

다 토해낸 후에야

매미는 비로소 여름을 졸업할 수 있었다.

 

여름의 가장자리

아직 충분히 불타오르지 못한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머물며

나는 매미가 되어 노래를 부른다.

 

유달리 푸르던

그 해 하늘을 기억하면서

 

김하은(강원도 춘천시 춘천여자고등학교)

 

 

 

 



■ 어린이부 대상작 

 

노을

 

노을이 되어 가면 

부끄럼을 타는 해

 

부끄러워 얼굴도 

불긋불긋 붉어지고

 

얼굴 반 

쏘옥 내밀고 

숨어보는 수줍은 해

 

문형빈(충북 충주시 성남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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