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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군지(洪川郡誌)오류3] 일제강점기는 있고 이전의 역사는 사라진 지명유래
용석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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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1/19 [19:14]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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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홍천군지』 중권 삶과문화, 제3장 읍·면·별 지명유래에서 홍천읍의 13개 모든 마을의 지명이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됐다.

그 이전의 유구한 역사는 잘라버리고 마치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홍천군의 마을지명이 만들어진 것처럼 돼버린 것이다.

일제가 우리 고유의 이름다운 지명을 쓰지 못하도록 마을지명을 바꿨지만, 강점기 이전의 지명을 제대로 수록하지 않아 지적이 일고 있다.

홍천읍 지명도 오류가 많았다.

홍천읍의 진리, 희망리(희망동리), 태학리, 연봉리, 삼마치리는 『여지도서』가 편찬된 1757년 ~ 1765년 이전부터 있었던 마을이다. 그리고 마을 이름이 적혀있는 모든 홍천읍지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역사가 깊은 마을이다. 여지도서 방리 항목 현내면(현 홍천읍) 내용이다.

‘縣內面 津里 自官門南距一里. 編戶 四十八. 男 七十一口 女 五十五口. 希望洞里 自官門西距一里. 編戶 一百七十一. 男 二百七十口 女 二百三十四口. 太學里 自官門東北間距三里. 編戶 三十七. 男 五十六口 女 四十三口. 檢柳里 自官門東距五里. 編戶 二十. 男 四十五口 女 二十三口. 東幕里 自官門東距十里. 編戶 四十. 男 九十五口 女 七十九口. 蓮峰里 自官門南距五里. 編戶 十九. 男 三十五口 女 二十四口.'

희망동리는 희망리로, 검유리는 송유리로 이름을 고쳤다가 다시 검율리로 오늘까지 이어온 마을이다. 모두 다 최소 250년의 이상의 역사를 가진 마을들이다.

결운리는 『여지도서』, 갈마곡리는 『관동지』, 신장대리는 『관동읍지』 때부터 있던 마을이다. 상오안리, 하오안리는 『관동지』에 기록된 오안리에서 출발해 『홍천군읍지』에서 상오안리와 하오안리로 분리된 마을이다.

장전평리는 『홍천현지』와 『홍천군읍지』에는 금물산면(남면)에 기록되어 있는 마을이다. 유일하게 와동리만 1914년 이후 편찬된 『강원도지 1941』에 처음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와동리를 제외한 홍천읍에 있는 모든 마을지명도 1914년 이전에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생긴 마을로 만들어 버렸다.

2018년 『홍천군지』 서석면 군두리(軍杜里) 소개 글에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시장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상군두리(上軍杜里)라 하고, 새둔지〔신둔지(新屯地)〕, 옥루동(玉樓洞)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하군두리(下軍杜里)라 하였는데, 근년에 다시 병합하여 군두리(軍杜里)라 하였다’로 되어있다.

상군두리와 하군두리로 분리된 시기를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로 못을 박았다. 상군두리와 하군두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이전인 1899년 『홍천군읍지』에 이미 상군두리와 하군두리로 분리되어 있었다. 『홍천군읍지』 상군두리, 하군두리 기록이다.

‘上軍杜里 八十里 상군두리 80리. 下軍杜里 七十五里 하군두리 70리’ ‘근년에 다시 병합하여 군두리라 하였다’고 했다. 상군두리왕 하군두리는 2018년 당시에 각각 독립된 법정리였다.

군두리는 현재가 아닌 상군두리 하군두리 이전의 마을 지명이었다. 『홍천현지』에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홍천현지』 군두리 기록이다.

軍杜里 自官門東距八十里 民戶 四十戶. 군두리 관문으로부터 남쪽 80리에 있다. 가구 수는 40호이다.

 

 



태학리 홍천읍 동쪽에 위치한 법정리로 본래 홍천군 화촌면의 지역이었다..?

군지에서는 태학리를 본래 화촌면 지역이라고 단정 지었다. 태학리는 본래 현내면 지역이었다. 『여지도서』, 『홍천현읍지』, 『관동지』, 『관동읍지』 『홍천현 읍지』 『홍천현지』, 『강원도지』에 모두 태학리를 현내면, 홍천면(『강원도지』) 지역으로 기록하고 있다. 단 한 번 1899년 편찬한 『홍천군읍지』에서 화촌면 항목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홍천군읍지』 이전의 기록을 보지 못했거나 무시했다.

화촌면 소개 글에서 ‘1895년(고종 35년) 홍천군이 되어 현내면, 두촌, 내촌, 서석, 영귀미(동면), 감물악(서면), 금물산(남면) 등 9개 면을 두었을 때 화촌면(花村面)이라 명명되었다. 그후 1917년 현재 불리고 있는 화촌면(化村面)이라 명명되었다.’

화촌면(花村面)은 1895년 훨씬 이전인 1760년대에도 불렀던 지명이다. 『여지도서』가 이를 증명한다. 또한 花村面이 化村面으로 바뀐 시점을 1917년 일제강점기로 못 박았다. 1829~1831년에 발행한 『관동지』에 이미 化村面(화촌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1871년 발행한 『관동읍지』 역시 마찬가지다.


 



1942년 내촌면(奈村面)을 내촌면(乃村面)으로 개칭하였다..?이 부분도 틀렸다.

乃村面(내촌면)은 1942년 일제강점기 훨씬 이전인 『관동지 1829~1831』, 『홍천군읍지 1899』,에 기록되어 있다. 하다못해 1942년보다 1년 전에 발행한 『강원도지 1941』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홍천군읍지 1899년 이미 내촌면(乃村面)으로 씌여졌는데 이를 1942년에 개칭된 것으로 기록돼 문제가 일고 있다.

이 외에도 마을 하나하나 근거를 제시하며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을 정도다. 2018년 당시 홍천군 법정리임에도 불구하고 거론조차 하지 않은 전치곡리(북방면)와 북방리(북방면), 남노일리(남면)는 유령 마을이 되어 버렸다.

읍·면·별 지명 유래는 그 마을의 이름에 관한 내력이고 역사다. 그럼에도 역사는 사라지고 일제강점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만 남은 것이다.

홍천군지는 홍천군에서 발행하는 홍천의 역사를 망라한 책이다. 그렇기에 보는 이들은 왜곡된 역사를 정설로 알고 그대로 믿는다. 군지가 왜곡되고 잘못 씌여진 것을 알게되면 누가 홍천군을 신뢰하겠는가? 따라서 지명유래는 1914년 통폐합이 아닌 이전과 최근의 역사를 토대로 다시 씌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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