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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군지(洪川郡誌)오류1] 잘못된 역사기술 개정해야

강대덕 박사 또 용역 맡아,.예산낭비 비판

용석준 기자 | 기사입력 2020/12/02 [15:03]

[홍천군지(洪川郡誌)오류1] 잘못된 역사기술 개정해야

강대덕 박사 또 용역 맡아,.예산낭비 비판

용석준 기자 | 입력 : 2020/12/02 [15:03]

홍천군지(洪川郡誌) 오류투성,... 4억 예산낭비 지적

오류 집필자 강대덕 박사 또 용역 맡아,...집필진에 가족(?) 참여, . 원고수 늘리기?

 

 

 

 

역사학자의 말과 글

 

말은 무겁고, 글은 진중해야 한다. 말은 흩어져 주워 담을 수 없고, 글은 기록으로 남아 지울 수 없다. 말 한 마디로 운명이 바뀌고, 글 한 문장으로 역사가 바뀌기도 한다. 범인도 그러할 진데, 역사를 논하고, 기록하는 사학자의 말과 글은 천근의 무게와도 같다.


지난 10월 16일 ‘홍천 수타사 대적광전의 문화재적 가치와 보존 및 활용’이란 주제로 홍천문화원에서 학술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이날 행사는 홍천군에서 국가지정 문화재 승격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전국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서 대적광전의 역사, 불교사, 미술사, 건축사의 가치에 대한 다양한 논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경주대 오새덕 교수가 “세조의 왕후인 정희왕후의 아버지를 윤번(尹璠)이 아닌 이문화(李文和)라고 잘못 표기해 소란의 빌미를 주었다. 이날 방청객으로 참석한 강대덕 박사가 이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장내가 소란해졌고 많은 기대를 갖고 자리에 참석한 지역 향토사학자들의 아쉬움도 컸다.

 

강대덕 박사의 지적은 틀리지 않다. 비록 본 주제인 수타사대적광전과 문화재적 가치와 연관성이 적은 사안이었지만 역사학자로서 기본적인 사실 관계의 오류지적은 방청객에게 혼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지적은 불가피했다. 어쨌든 오 교수는 그게 착각에 의한 실수 건, 무지에 의한 실수 건 학자로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중해야 한다.

 

앞으로 홍천군의 역사를 논하는 자리에서는 스스로 나서지 않는 게 역사학자로서 자세이고 태도이다. 강대덕 박사도 마찬가지다. 강 박사 또한 홍천의 역사서인 “홍천군지”편찬에 집필진으로 참석했고 그가 쓴 홍천의 지명유래 등에서 상당한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역사학자들의 말과 글에 천근의 무게와 같은 책무를 다시 한 번 일깨우고 귀중한 혈세로 제작된 홍천군지가 잘못된 역사학자의 기술로 왜곡되었기에 군의 조속한 개정을 요구하며 홍천군지의 몇 가지 오류를 지적하고자 한다. 

 

 

 

 


홍천군은 1989년에 이어 27년만에 지난 2018년 4억을 투입해 『2018 홍천군지』를 발행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진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집필진 중 강대덕 박사는 그의 부인과 아들이 군지 편찬에 함께 참여한 사실이다. 가족이 함께 집필진에 참여하는 것은 흔치 않는 일이다. 다만 편찬된 군지내용에서 사실과 다른 역사적 오류가 있다면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홍천군지(洪川郡誌)는 홍천의 기록이며 역사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그대로 기록해 놓아 후대에 역사서가 된다. 옛날로 치면 읍지(邑誌)이다. 홍천의 역사는 대표적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홍천현읍지』, 『관동지』, 『홍천현지』, 『대동지지』, 『관동읍지』, 『화산현지』, 『홍천현 읍지』, 『홍천군읍지』, 『강원도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홍천군지(洪川郡誌)의 역사적 오류

 

1. 도덕리가 없는데 있다고 표기했다.

 

2018년 홍천군지 중권 삶과 문화편 중 제1장 인문환경 (3) 두촌면(斗村面) 39P를 보면, “장남리는 인제군과 경계를 이루는 마을이다. 건니고개 아래는 원거리·강지나뭇골·장사랑이·도덕골 마을이 있다. 남덕골은 남양 홍씨가 덕을 베풀고 살았다 하여 붙여진 마을로 『여지도서』에 도덕리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강원도 옥수수시험장이 있다.”라고 표기했다. 그러나

 

▶ 『여지도서』는 1757년(영조 33)∼1765년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만든 공식적인 전국 읍지 모음집이다. 때문에 역사학자들이 꽤나 인용하는 지리서이다. 『여지도서』가 발행될 당시 지금의 두촌면은 말촌면으로 기록되어 있고, 말촌면에는 철은정리와 자음리만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 도덕리는 없다.

 

“末村面 哲隱亭里自官門東北間距四十五里編戶一百五男二百十二口女一百四十五口 自陰里自官門東北間距六十里編戶九十四男一百四十三口女九十口”

 

“말촌면 철은정리는 관아에서 동북쪽 45리이다. 호적으로 편성된 민가는 105호이다, 남자 212명이며, 여자 145명이다. 자음리는 관아에서 동북쪽으로 60리이다. 호적에 편성된 민가는 94호이다. 남자는 143명이며, 여자는 90명이다.”

 

말촌면이 두촌면으로 이름이 바뀌고, 도덕리가 등장한 것은 『홍천현읍지(규장각 소장, 발행 연대 미상』, 『관동지(1829년∼1831년』부터다. 

 

 

 

 

2. 서석면의 법정리는 8개인데 7개로 표기했다.

 

홍천군지 중권 삶과 문화편 중 제1장 인문환경 (5) 서석면(瑞石面) 소개에서 42P “면소재지는 풍암리다. 검산·풍암·생곡·어론·수하·군두·청량 등 7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고 표기했다. 그러나

 

▶『홍천군지』 발행 시점인 2018년도 서석면의 법정리는 8개였다. 군두리는 상군두리, 하군두리로 각각 별도의 법정리이다.

 

 

3. 여지도서에는 갈마곡리가 없는데 있는 것으로 표기했다.

 

홍천군지 중권 삶과 문화편 중 제2장 산천의 지명유래 83P에 1) 홍천읍을 보면, “ 『여지도서』에 홍천읍은 현내면(縣內面), 지역으로 진리(津里), 희망동리(希望洞里), 갈마곡리(葛麻谷里), 태학리(太學里), 검유리(檢柳里), 동막리(東幕里), 연봉리(連峰里) 등 7개 지역의 위치와 호구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 『여지도서』 홍천 방리에는 갈마곡리가 없다. 갈마곡리는 『여지도서』 이후 발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홍천현읍지(규장각 소장, 발행 연대 미상』에 비로소 등장하는 마을이다.

 

 

 

 


 

4. ‘진리에서 신장대리 닥바우로 가는 나루터’는 잘못된 문장이다. 닥바우는 신장대리가 아닌 갈마곡리에 있는 바위이다.

 

홍천군지 중권 삶과 문화편 제3장 읍면별 지명유래 중 117P, "(1) 진리(津里)소개를 보면, 진리-나루새 : 진리에서 신장대리의 닥바우로 가는 나루터. 부근에 군용(軍用) 비행장이 있었음. 1990년대까지 이 나루터를 중심으로 홍천의 5일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 "진리에서 신장대리의 닥바우로 가는 나루터"? 홍천 읍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다. 이 문장대로라면 홍천강 북쪽 강변에 나란히 붙어있는 진리와 신장대리를 나룻배로 이용해 왕래한다는 얘기다. 닥바우는 신장대리가 아닌 갈마곡리에 있는 바위이다. 이쯤 되면 집필자가 홍천의 역사는 물론 현재의 홍천도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든다. ‘홍천군지’라는 명칭이 부끄러워진다.

 

이 외에도 251P 성동리에 있는 대룡저수지를 상화계리에 있는 큰 저수지로 소개하는 등 자잘한 오류는 일일이 지적하기도 버겁다.

 

『홍천군지』는 군에서 인증한 홍천에 관한 공식기록이다. 군지는 동시대를 사는 홍천군민에게는 자긍심이며, 후손에게는 고향의 역사이다. 한번 잘못된 기록은 대물림처럼 이어진다. 홍천군지 상권에서 다시 한 번 오류를 살펴보자.

 

 

 

 


『2018 홍천군지』 상권에서 자연과 역사 455P 3. 누정 소개에서 1) 범파정에 기록된 내용이다.

 

범파정은 「홍천읍 갈마곡리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강원도지』에는 ”객관 앞에 있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간략히 기록하고 있다 ‘홍천현읍지’에 ”가정(嘉靖) 연간에 현감 노연(魯延)이 창건한 정자로 효종 무진에 현감 김만춘(金萬春)이 중 했고, 도광(道光) 9년 기축년에 현감 한여(韓璵)가 개건하였다“고 한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5. 위 표기된 문장에서 3개의 역사적 오류와 1개의 혼란이 발견된다.

 

▶『홍천현읍지』라는 이름을 가진 읍지는 2개다. 첫 번째 홍천현읍지는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洪川縣邑誌(발행 연대 미상』이고, 두 번째 홍천현읍지는 백원정사 필사본인 『洪川縣 邑誌』이다.

 

통상 두 읍지를 구분하기 위해서 규장각 소장, 백원정사 필사본을 함께 표기한다. 혹은 각각의 표지에 기록한대로 띄어쓰기로 구분하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건 구분을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두 읍지의 발행연대, 기록 내용이 전혀 달라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2018 홍천군지』에서 인용한 백원정사 필사본 『洪川縣 邑誌』의 범파정 기록의 원문을 살펴보자. 『洪川縣 邑誌(백원정사 필사본)』 - “泛波亭 在縣東二里 嘉靖間縣監魯延岭所創 本朝孝宗戊辰間縣監金萬春重修 道光九年己丑縣監韓璵改建“

 

▶홍천현읍지를 구분하지 못한 것은 둘째 치고 인용한 원문조차 틀렸다. 원문에는 범파정을 만든 이를 노연이 아닌 노연령으로 기록하고 있다. 홍천현감 중 노연은 없다.

 

다른 홍천읍지와 비교 분석을 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화산현지(花山縣誌/일본 오사카부립 나가노시마도서관 소장)』의 범파정 기록은 아래와 같다.

“泛波亭 ~ 중략 ~ 嘉靖間縣監魯延岭所創 本朝孝宗戊戌間縣監元萬春重修”

 

『홍천군읍지(洪川郡邑誌)』 범파정에 관한 기록은 아래와 같다.

“泛波亭 ~ 중략 ~ 嘉靖間縣監魯延岭所創 本朝孝宗戊戌間縣監元萬春重修 今廢”

 

 

 

 

▶효종의 재임기간이 1649년 ~ 1659년이니 무술년은 1658년이다. 1658년 당시의 홍천현감은 김만춘이 아닌 원만춘이다.

 

원만춘은 1658년의 2월 20일 홍천현감으로 부임해 1661년 3월 11일 퇴임했다. 내용이 틀린 『홍천현읍지(洪川縣 邑誌/백원정사 필사본)』을 인용했으니 무술년을 무진년으로, 원만춘을 김만춘으로 기록했다. 무진년은 1628년과 1688년이니 효종 재위기간에 무진년은 없었다. 기본적인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오류는 피할 수 있었다.

 

 

 


 

필자는 『홍천군지』 전체를 세세하게 살피지 않고 관심 있는 분야를 짧은 시간에 흩어본 것만으로도 이런 오류를 발견했다.

 

홍천군지를 오류투성이로 만든 집필자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앞으로 홍천군의 역사를 논하는 자리에서는 스스로 나서지 않는 게 역사학자로서 자세이고 태도이다. 그런데 강대덕 박사가 최근 홍천군 관광과에서 발주한 ‘이괄 말무덤 관광자원화를 위한 복원타당성 연구’용역의 책임 연구원를 맡았다. 그의 부인도 합류했다.

 

잘못된 역사기록과 예고되는 실수는 바로 잡아야 한다. 누군가는 지적하고, 누군가는 수정하고 또 누군가는 경계해야 한다. 아울러 시급한 것은 개정판을 내는 것이다. 홍천군의 귀중한 혈세로 잘못 제작된 역사서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일그러진 홍천을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용석춘 홍천뉴스투데이편집장

 

 

<홍천지역언론연합회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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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향사람 2020/12/03 [13:24] 수정 | 삭제
  • 윗글 강대덕씨 글 어투가 이북방송 같습네다.. '짓거리로 끊임없이 날뛰고 있다'ㅎㅎ역사학자 맞아?
  • 역사학자 2020/12/03 [13:15] 수정 | 삭제
  • 주는 기사만 베끼는 관변신문은 아니네요. 군의 예산으로 집행되는 사업결과가 엉망이라면 당연히지적되고 책임져야죠.잘못된거 당연히 파헤치는건 신문의 의무고 돈받고 오류를 범했으면 책임져야지 무슨 변명입니까?이런 분이 한서대상이라니, . 그것도 한서선생을 비판하고 대상제정을 반대한 사람에게 상금을 주는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수상을 철회하고 군지오류도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다를 신문들은 한줄도 안쓰네..
  • 한심이 2020/12/03 [09:16] 수정 | 삭제
  • 먼 번명이 이리 많노 쪽팔리게 담부터 하지마세요
  • 바른 역사학자 2020/12/03 [09:07] 수정 | 삭제
  • 내가 역사학자라면 자존심때문이라도 변명않고 절필하겠습니다..그렇게 하지못하면 정중히 사과할일입니다.홍천군민의 세금으로 원고료 다 지불했는데, . . 개정판은 역사학자님께서 부담해야 합니다
  • 우수마발 2020/12/03 [07:55] 수정 | 삭제
  • 4억들여 만든 것이 오류투성이라니? 이거 관련 해당 학자, 책임지고 홍천군 담당자도 문책해야 하는것 아닌가요? 그런사람들이 다시 용역을 맡는것도 문제네요ㅠㅠ
  • 강대덕 2020/12/03 [02:47] 수정 | 삭제
  • 내일의 행복을 열어가는 역사학자 강대덕입니다.
    미치광이 뉴스투데이 편집장 용석춘은 기자정신도 전무한 자격없는 자임이 들어났다.
    이제서야 지인으로부터 연락받고 인터넷 뉴스투데이, 더뉴스24(대표 오주원) 등이 "홍천지역언론연합회공동취재" 보도는 사실과 다르게 제4회 한서대상 수상자로 발표된 정통 역사학자를 모독하고 명예를 훼손하려는 의도에서 의도적으로 천하무지한 뉴스투데이 편집장 용석춘이 주동이되어 "홍천지역언론연합회공동취재" 이름으로 미치광이처럼 날 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소아병적인 발상에서 개버릇 버리지 못하고 구역질나는 짓거리로 끊임없이 날뛰고 있다.

    지난 10월 16일 ‘홍천 수타사 대적광전(1636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호)의 문화재적 가치와 보존 및 활용’이란 주제로 홍천문화원에서 학술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이날 행사는 홍천군에서 국가지정 문화재 승격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그러나 홍천군의 혈세를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홍천을 무시한 전국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서 대적광전의 역사, 불교사, 미술사, 건축사의 가치에 대한 다양한 논거를 제시했다고 하는 자리에 대한민국의 중견 정통 역사학자로서 정년 후 내고향 역사를 연구하고 지역학 연구에 정진하면서 재능을 기부하여 춘천과 홍천, 하남, 천안, 서울 등지에서 역사학자로서 동분서주하면서 향토문화와 향토역사에 매진하고 있는 정통역사학자이다.
    그날 경주대 오세덕 교수가 “세조의 왕후인 정희왕후의 아버지를 윤번(尹璠, 1418년 홍천현감 부임)이 아닌 이문화(李文和)라고 잘못 표기해 소란의 빌미를 주었다. 이날 방청객으로 참석한 정통 역사학자 강대덕 박사가 이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미치광이 용석춘의 '소란'이란 표현은 어불성설이며 그자리에 있지도 않고 남의 보도기사를 바탕으로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곡필하였다. 기자정신을 망각한 처사인지, 아니면 미치광이 기자인지 상황도 모르면서 멋대로 기사를 엉망으로 보도하는 인터넷 기자일 뿐이다.

    그날 발표자는 먼저 "당시 홍천 현감 윤번의 딸"을 외조부 "홍천 현감 이문화가 홍천 공아에서 난 딸"로 발표하였으나 종합토론 좌장을 비롯한 발표자 및 토론자 모두 대한민국의 최고라고 자기 자랑들만 들어놓았지 누구하나도 잘못을 지적한 자 1명도 없었다. 그리고 洪川의 壽陀寺 전신인 日月寺를 창건한 원효(686년 入寂)는 敎宗의 華嚴宗으로 元曉의 和諍思想(敎觀幷修, 定慧雙修)도 모르는 자들이 發表 討論한다니 閑心할 뿐이다. 禪宗이 아님에도 創建연대를 708년을 9세기 중엽으로 역사적 중요한 1차 史料根據 없이 네려잡았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원사료도 한줄 보지 않고 쓴 미술사학 전공자들의 크나큰 오류를 범하여 종합토론시간에 세계 어느 학술토론을 참석해봐도 자기들만의 시간끌기식으로 2번씩이나 돌리는 곳이 없는데도 좌장 최모씨는 2번씩이나 발표자, 토론자를 돌리면서 객석 질문자를 1명 지정하는 처사 또한 홍천의 주민들을 무시하는 처사이기에 휴식시간에도 좌장 최모씨에게 문제제기 2번이나 했음에도 수용하지 않았다. 객석 토론질문 기회가 주어지자 분명하게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면서 마술사, 건축사, 건축공학, 문화재학 전공자들로서 문헌사학을 중시하지 않고 표면적인 대적광전(1636, 인조14)의 법당건축만 논의하였고 법당이름이 왜 대적광전인지도 설명하지 못하는 발표 및 토론자들께 정문일침을 가하였던 사실이 있었다. 저는 정통사학자로서 수타사와 전신 日月寺址에 대한 논문발표를 전국단위에서 "홍천현 우적산 일월사 사적"을 근거로 이를 분석하여 연구발표로 "국사편찬위원장상"을 수상한 정통 역사학자이다. 그리고 또한 수타사 흥회루 해체 보수과정에서 발견된 중수기를 오역(한문전공자 권모씨, 강원일보 및 강원도민일보 권모기자 직역)하여 본 역사학자가 지적하여 번역을 제대로 하였다. 그러나 발표자 모두 잘못 번역된 것을 위 두 신문사의 보도내용을 인용하는 무지무식한 미술사, 건축사, 건축공학, 문화재 전공자들의 무지한 연구발표, 적어도 흥회루 중수와 창건은 "수타사사적기"나 "건봉사본말사적" 원사료를 분석 연구하여 발표하여야 한다. 사료 전거를 신문의 오역된 기사를 인용하는 발표자 및 토론자 모두 지적 하였다.
    그러나 발표장에 나타나지도 않은 미치광이 용씨 편집장이 기사보도는 자기당착에 빠진 미치광이의 보도식 엉터리 기사를 쓴 곡필일 뿐이다.

    그리고 홍천군지(2018)를 마치 위 지적사항 모두 역사학자 강대덕이 집필한 부분이 잘못된 것처럼 왜곡 보도하고 있다. 이또한 역사의 개념과 개론도 공부하지 않은 무지무식한 자의 소행으로 1,2 부분은 그들이 감싸고 도는 허모 가짜 향토사학자(집필위원, 감수위원)가 집핍한 부분이며, 편찬위원과 집필위원으로서 역사학자 문학박사 강대덕 10개 읍면과 산천 지명관련부분에서 홍천읍 부분의 "輿地圖書"(1759)의 리단위 지명 명칭중 갈마곡리는 "戶口總數"(1789), "關東誌"(1830전후)에 비로서 나타나는 지명인데, 역사학자로서 잘못 된 것은 인정했고 수정이 감수자께서 감수과정에서 찾아내지 못해 간행후 오자를 수정하기로 하였고 진리나루에서 닥바우를 갈마곡리인데 착각하여 신장대리로 4자지명을 혼동하여 오자임을 확인하여 교정을 하였으나 인쇄과정에서 감수자 등이 발견 못하여 2곳뿐임을 인정한 바 있다. 10읍면의 지명을 A4용지 200~250여매를 연구한 후 정리 작성하면서 두 곳이면 역사학자로서 큰 문제라고 사회통념상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현재 강릉원주대 모교수(전 강원도사 상임위원)가 집필한 다른 집필자이니 정정보도를 정중히 요구한바 있다. 그리하지 안으면 법적 민형사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10월 30일자로 홍천군으로부터 홍천문화원 학술연구용역("이괄 말무덤" 관광자원화를 위한 복원타당성 연구’) 책임연구원를 맡았다. 11월 25일 착수보고회 때까지 연구구성원은 연구책임자로서 역사학자 문학박사 강대덕, 공동연구원 한림대 연구교수 문학박사 심모 역사고고학자, 연구보조원 전모 문화원 연구소 연구위원, 보조원 문화원 연구소 안모, 등 4명이 구성원으로 희망자 공개모집 후 선정과정을 걸쳐 11. 2. 착수회 후 25일 착수보고회까지 1각, 1건도 23일간 용역보고서를 작성 제출도 하지 않고 이름만 올려 놓은 비윤리의식의 혈세만을 축내는 자를 연구책임자 직권으로 1명을 교체하여 연구소 연구위원 차모(전 공무원 정년), 박모(전직 중등교사), 그리고 제처인 미술사학자(문학박사수료, 미술교육자, 4년제 대학 외래교수, 고등학교 40년간 수석교사) 이모 등으로 사전 구두 교체보고 후 행정절차 진행중이다. 이 또한 남의 가정의 부부를 명예훼손하고 모독하는 형사적 범죄행위임으로 묵과하지 않겠다. 당연히 문화원 연구소 연구위원의 자격으로 공동 구성원으로서 최하 말단 작위인 보조원으로서 8/90일 학술연구용역 기간의 보조원으로서 새로 교체하여 연구진행을 돕는 보조원일뿐이다.
    그러나 자격기준(기획재정부 학술연구용역규정)은 1. 책임연구원 아래인 2. 공동연구원 자격이나 3. 연구보조원, 말단에서 연구진행자체를 돕는 4.보조원의 자격으로 함께 연구용역을 돕고 있다.

    학술연구용역의 개념도 모르는 무지한 용씨 편집장께서는 홍천군지 세밀하게 살펴보고 집필자 확인 후 정정보도 요청하며 법적으로 살펴보고 보도내용 제공자 모두 책임을 법적으로 묻겠다.

    2020.12. 3. 새벽 2:47

    내일의 행복을 열어가는 역사학자 문학박사 강대덕 올림.
  • 오류 2020/12/02 [19:53] 수정 | 삭제
  • 오류투성이, 잘못된 책을 만들었네요. 틀려도 너무 많이 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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