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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540호 홍천읍내 ‘괘석리 4사자 삼층석탑’ 안내간판 수정해야

동언우 연구위원, ,사사자 삼층석탑은 고려후기가 아닌 전기로 표기돼야

용석준 기자 | 기사입력 2020/11/16 [16:06]

보물 제540호 홍천읍내 ‘괘석리 4사자 삼층석탑’ 안내간판 수정해야

동언우 연구위원, ,사사자 삼층석탑은 고려후기가 아닌 전기로 표기돼야

용석준 기자 | 입력 : 2020/11/16 [16:06]

구, 홍천읍사무소 미술관 앞마당에 설치된 보물 제540호 ‘괘석리 4사자 삼층석탑’의 안내 입간판 설명서가 석탑 하층기단의 안상 위치를 잘못 설명하고 있으며, 석탑의 조성시기도 고려후기가 아닌 전기로 표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홍천미술관 앞에 설치된 사사자 삼층석탑  안내 입간판

 


안내 입간판, 안상의 위치를 잘못 설명하고 있다
.

 

동언우 홍천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현재 4사자 삼층석탑의 안내 입간판에는 “지대석 각 면에 안상을 조각했으며….” 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동위원은 “저석은 하단부에 높직하게 각출하고 다시 그 위에 낮은 각형의 괴임단으로 면석을 받게 되었는데 각 면에는 2구의 안상이 음각되었으며 안상 내에는 화형이 조각되어 있다.”며 2012년부터 현재까지 괘석리 4사자삼층석탑 하층기단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는 양식의 구조로 설명돼 이곳을 찾아오는 문화 탐방객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석탑 구성도>

 

▲    박경식 '한국의 석탑'



▲   강우방, 신용철의  "탑"

 


동 위원은 괘석리 4사자삼층석탑 설명문 중에 지대석 각 면에 안상을 조각했다는 것은 괘석리 석탑의 하층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단국대학교 사학과 박경식 교수가  입간판 문안을 작성했다고 ‘앤가드’가 홍천군청에 제출한  ‘괘석리 4사자삼층석탑 보존처리공사 보고서’에 기술하고 있으나, 박경식 교수가 편찬한 ‘한국의 석탑’ 부록 편에 있는 석탑관련 용어에서는 지대석에 대하여 ‘기단과 지면이 닿는 부분에 사용된 석재, 보통 여러 장의 판석을 이용하여 지면을 덮고 있다.’ 고 설명하고 있으며 <표 석탑구성도> 에서도 지면에서 하층 기단부 중 하대 저석을 받고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강우방 선생과 신용철의 공저로 편찬한 ‘탑’에서는 지대석 용어 설명에서 ‘탑이 세워질 지면을 단단하게 다진 후에 놓는 돌로서 하층기단이 놓여질 부분은 잘 다듬어져 있지만 아랫부분은 그랭이 기법을 사용한다.’고 설명하고 <석탑 구성도>에서도 지대석이 하대 저석을 받치고 있다

 

그리고 4사자석탑의 안내 입간판을 설치한 ‘엔가드’업체에서 작성한 ‘홍천 괘석리 4사자삼층석탑 보존처리공사 보고서’ 내용 중 괘석리 삼층석탑 연혁 및 현황에서도 ‘하층기단 면석 각 면에 2구의 안상을 새겼고…’ 라고 설명하고 있다.

 

 

▲  사사자 삼층석탑의 하층기단이 자갈 속에 파묻혀 있소 안내판 설명도 잘못되어 있다.

 


괘석리 4사자삼층석탑 하층기단부에 대하여 정영호 박사는 ‘한국석탑의 특수양식고찰 下’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탑이 원위치에 유존할 당시 상태를 고찰해 보면, 이층의 기단상에서 삼층 탑신을 건조한 것인데 최하부에는 지대석이 있으나 매물 되었다. 기단부는 상‧ 하 이층으로 구성되었는바 하층기단은 기대가 면석, 갑석등이 동일석으로 조성되어 큼직한 일판석으로 이루어졌다. 기대(저석)는 하단부에 높직하게 각출하고 다시 그 위에 낮은 각형의 괴임단으로 면석을 받게 되었는데 각 면에는 2구의 안상이 음각되었으며 안상 내에는 다시 삼산형 화형이 조각되어 있다.”로 설명하고 있고, 이후 연구자들의 논문에서도 괘석리 4사자석탑의 기단부에 대한 양식 설명은 정영호 박사의 ‘한국석탑의 특수양식 고찰 하’ 괘석리 사사자삼층석탑의 기단부 내용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   홍천괘석리 사사자삼층석탑 하층기단

 

▲   홍천괘석리 사사자삼층석탑 하층기단

 

 

동 위원은 괘석리 4사자삼층석탑의 하층 기단 양식을 정확하게 설명해야 우리 홍천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것이고 찾아오는 문화탐방객에게도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라며 입간판의 빠른 수정을 요구했다.

 


석탑의 조성시기는 고려후기가 아니라 고려초기 혹은 전기로 수정해야 한다.

 

동언우 위원은 “4사자삼층석탑의 안내 입간판 내용 중에는 ‘이 석탑은…고려시대 후기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설명하는데 어떠한 자료에서 인용되었는지 알 수 없다. 왜냐 하면 필자는 고려시대 후기의 근거를 확인하려고 많은 논문을 찾아보았지만 확인할 수 없었고 오히려 정영호 선생의 ‘한국석탑의 특수양식(하)’를 대부분 인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영호 선생은 “이 석탑은 각부에 약간의 파손이 있고 부분적으로 마흔(磨痕)이 보이나 대체로 원형을 잘 간직한 완형(完形)으로 형태도 정연(整然)한 우작(優作)이라 하겠다. 조성연대는 하층 기단 면석의 안상과 그 내면의 화문장식, 그리고 상기의 4사자와 중앙부, 연화좌 및 탑신부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소작(所作)으로 볼 것이나 각 부재의 조성수법은 신라인의 작풍(作風)을 답습한 면도 많으나 초반기로 잡아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괘석리 4사자삼층석탑의 조성시기를 정영호 선생의 논문인용이 대부분이고 고려전기로 명시한 연구자들이 많다. 그러나 고려 후기의 양식으로 보는 견해를 가진 연구자는 찾을 수 없었다.

 

홍천군 두촌면 괘석리 4사자석탑의 조성시기에 대하여 명시한 논문 및 보고서는 아래와 같다

 

① 신문주는 강릉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에서 ‘간략화 된 하층기단’은 좌측 괘석리 사사자 석탑 하층기단처럼 한 돌로 제작되어 마치 단층기단처럼 보이지만 본래 표현되었던 우주와 탱주, 갑석과 저석을 모두 모각하여 하층기단부를 조영한 것이다. 이러한 형식은 동사리 석탑, 춘천 창촌리 석탑, 사자빈신사지 석탑 등에서 확인된다. ‘간략화 된 하층기단’은 11세기 초부터 나타나게 된다. 고려전기 석탑이 기단부에 연판문을 장식할 경우, 대다수는 이중기단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② ‘엔가드’의 ‘홍천 괘석리 4사자삼층석탑 보존처리공사 보고서’에서는 ‘기단에서 보이는 안상 조각수법과 석사자, 연꽃받침 및 옥개석의 3단 받침 등에서 고려시대 양식이 보이나, 전체적인 형태와 구성이 통일신라 방법을 많이 따르고 있어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③ 김혜경은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에서 ‘갑석의 면석 상단에 굽을 조각하여 돌렸으며 이러한 특징은 안상의 화형문 장식과 함께 고려 초의 석탑에서 보이는 특징이다.’라고 했다.
④ 김미자는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에서 ‘하층기단 갑석은 면석의 상단에 굽을 돌려 모각하였으며 이러한 형식은 고려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이 석탑의 편년(정영호의 조성시기로 보았다)의 기준이 된다고 볼 수 있겠다.’고 했다.

 

⑤ 홍대한은 단국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에서 ‘기단에서 보이는 안상 조각수법과 돌사자 연꽃받침 및 지붕돌의 3단 받침 등에서 고려시대의 양식을 물씬 풍기고 있다. 각 재료의 구성이 통일신라의 방법을 많이 따르고 있지만 11세기 말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⑥ 이은철은 ‘한국의 사자석탑’의 연구에서 ‘이 탑의 조성 연대는 4사자의 조각수법과 상층기단 갑석 하면의 연화문 그리고 탑신부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작품으로 볼 것이나 각 부재의 조성 수법은 신라시대의 작풍을 답습한 면도 많으니 고려 초반기로 추정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고 했다.

 

⑦ 정영호는 ‘한국의 특수양식 고찰(하)’에서 조성연대는 하층의 기단 면석의 안상과 내면의 화문장식, 그리고 상기 사사자와 중앙부 연화좌 및 탑신부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소작(所作)으로 볼 것이나 각 부재의 조성수법은 신라대의 작풍을 답습한 면도 많으니 초반기로 추정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고 했다.

 

⑧ 최성은은 ‘고려 현종대 석탑부조의 연구’에서 ‘금장암지 석탑은 인물상의 비례를 비롯하여 안상 받침에 새겨진 안상에 현종(1009~1031년)대 석조물에서 유행하던 화형의 중앙장식이 보이지 않고….’

 

위 논문을 중심으로 괘석리 4사자삼층석탑의 조성시기는 정영호 교수의 고려 초기 학설은 ③, ④, ⑥, ⑦ 과 고려전기로 양식으로 보는 ①, ②, ⑧ 견해와 11세기 말로 보는 견해는 ⑤로 구분되고 있다.

 

동 위원은 4사자석탑 및 고려석탑에 관한 논문 및 보고서 10여 편 이상을 검토하였으나 고려 후기의 석탑으로 보는 연구자들의 논문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동 위원은 ‘홍천 괘석리 4사자삼층석탑 보존처리보고서’를 보면 보고서를 제출한 ‘엔가드’에서 괘석리 4사자삼층석탑의 문화재 안내판을 설치했다고 보고서에 설명 되어 있는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문화재 안내판에는 괘석리 4사자석탑의 조성시기가 고려 후기로 명시되어 있으나 ‘홍천 괘석리 4사자삼층석탑 보존처리보고서’ 내용 중 연혁 및 현황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화엄사 4사자석탑이지만, 기단에서 보이는 안상 조각수법과 석사자, 연꽃받침 및 옥개석의 3단 받침 등에서 고려시대 양식이 보이나, 전체적인 형태와 구성이 통일신라 방법을 많이 따르고 있어 고려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동언우 연구위원은 괘석리 4사자석탑의 조성시기를 기존 연구자들이 학위논문 및 학술논문에서 주장했듯이 고려 초기 혹은 고려전기로 보는 것이 적합하며 안내간판을 고려후기가 아닌 고려전기로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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