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동로마 수도…신약의 일곱교회의 흔적”

<스페셜> 동서양의 가교역 터키(중편)

소정현기자 | 기사입력 2018/10/22 [16:39]

“동로마 수도…신약의 일곱교회의 흔적”

<스페셜> 동서양의 가교역 터키(중편)

소정현기자 | 입력 : 2018/10/22 [16:39]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에 걸친 지정학적 핵심국가

이스탄불!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1세 수도로 채택

기독교박해 피해 암굴속 지하도시 데린쿠유 건설

 

노아방주 머물렀던 장소, ‘신약성경 사도들 사역지

사도바울 요한박해 무릅쓰고 일곱교회 개척 역사

바이블 사학자 일곱교회들 특성 시대적 구분하기도

 

▲ 터키지역은  지정학적으로  수많은 고대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겪었다. 

 

 

 

▲ 터키 동쪽은 러시아, 아르메니아, 시리아, 이라크로 국경을 접하고 있다. 

 

 

터키의 지정학적 위치와 문화

 

터키는 전략 요충지인 보스포러스(Bosporus) 해협, 다르다넬스(Dardanelles) 해협을 사이로 하여 아시아와 유럽의 두 대륙에 걸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국가이다. 서쪽으로는 그리스, 불가리아로부터 동쪽은 이란, 러시아, 아르메니아, 시리아, 이라크로 국경을 접하고 있다.

 

터키는 전략 요충지인 보스포러스(Bosporus) 해협, 다르다넬스(Dardanelles) 해협을 사이로 하여 아시아와 유럽의 두 대륙에 걸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국가이다.    

 

 

 

보스포러스(Bosporus) 해협의 위용

 

 

 

특히 전 세계 관광객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이스탄불은 숱한 문명이 피고 진 역사의 현장이다. 1000년 이상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수도였으며, 500년 이상 오토만 터키 제국의 수도였다.

 

면적은 남북한의 4배인 78이고, 인구는 7981만명(2017년 기준)이다. 주요 도시로는 수도가 있는 앙카라(500), 이스탄불(1,200), 이즈미르(300) 등이며, 종교는 이슬람교(99%).

 

터키 지역은 역사적으로도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융합된 나라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약 1600년 동안 세계를 제패한 로마, 비잔틴, 오스만 터키 등 3개 제국의 수도였기에 여러 문명에 걸친 유적들로 터키를 가리켜 인류 문명의 박물관으로 부러움을 자아냈다.

 

특히 전 세계 관광객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이스탄불은 숱한 문명이 피고 진 역사의 현장이다. 1000년 이상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수도였으며, 500년 이상 오토만 터키 제국의 수도였다.

 

AD 324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1세가 수도로 채택했고, 후에 콘스탄티노플로 개칭되었다. 1453년에는 오토만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수도가 앙카라로 옮겨졌고, 1930년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개칭되었다.

 

터키 민족은 우리나라의 고대사에 가끔씩 나타나곤 했던 돌궐족(투르크)이 서진하면서 이슬람화 하여 지금의 터키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돌궐족은 우리 역사에서 여러 번 등장하며 특히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을 이루었을 때 고구려와 동맹을 맺어 수나라와 공동으로 대적하였던 고대 우리의 우방 국가였다. 돌궐, 몽골 등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우랄 알타이어’(Ural Altaic)를 사용하는 고대 같은 뿌리를 가진 국가이다.

 

이 지역이 역사적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은 동쪽으로부터 페르시아제국이 침략하면서 부터이다. BC 6세기 중반 페르시아 제국의 시루스 대왕(Cyrus the Great)은 순식간에 소아시아 반도 전체를 점령함으로서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에 포함되었고, 이후에 BC 333년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으로 헬레니즘 문명으로 바뀌게 된다.

 

흔히 서양의 역사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두 축을 기반으로 형성 발전되어 왔다고 말한다. 헤브라이즘이라 함은 유대교를 기초로 한 기독교 전통을 의미하며, 헬레니즘은 알렉산더가 남긴 제국의 문화를 지칭한다. 헬레니즘 시대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사망한 기원전 323년에서 그리스의 심장부가 로마에 병합된 기원전 146년까지의 기간을 이른다.

 

AD 330년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명명된 신성 로마의 수도 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그 이름이 콘스탄티노플로 불리웠다.

 

로마제국의 기독교박해를 피해 이곳에 거주하게 된 이후, 7세기 말경에는 아랍인들의 침략을 피해 기독교인들은 이곳에 굴을 파고 거주하면서 암굴 속에 도시를 건설하여 기독교 문명을 후세에 남기게 되었으며 우리는 이곳을 깊은 우물이라는 뜻의 데린쿠유(지하도시)라고 부른다.

 

카파도키아(Cappadocia)에 있는 대부분의 암굴교회나 그 속의 벽화는 9-10세기경에 그려진 것이다. 11세기부터 촉발된 동부로부터의 터키 인들의 이주로 소아시아 반도는 이슬람화 되었고 셀주크나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영향권 내에 들어가게 되었다.

 

1071년 셀주크 튀르크(Seljuk Turk)에서, 1453년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Mehmet) 2세에 의하여 함락되면서 이스탄불로 개명(改名)되었다.

 

1923년 터키 공화국으로 바뀌게 되면서 수도를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이전(移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터키공화국과 그리스와의 전쟁과 협정에 따라 이 지역에 거주하던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타의에 의해 그리스로 이주함으로서 오늘날은 그들이 남겨놓은 흔적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  키에는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피신처로 사용했던 지하 동굴과 지하 교회도 터키에 있다.   


 

신구약 성경속의 터키지역은?

 

터키에는 구역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와 아라랏 산, 그리고 기독교 초기의 일곱 교회가 있었던 유서깊은 장소이다. AD 300년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종교의 자유를 얻었던 시대에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던 땅인 동시에 한때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피신처로 사용했던 지하 동굴과 지하 교회도 터키에 있다.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산은 터키 동부 아르메니아와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다.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창세기 8:4)

 

터키 전역은 초대 교회 당시 사도 바울과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그 일행들의 발걸음이 닿았던 곳이며, 저들이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워 복음이 융성하였던 곳이다.

 

신약의 초대 교회 당시 소아시아의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 지역이 바로 오늘날의 터키지역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 하노니”(베드로전서 1:1~2)

 

사도 바울이 태어난 곳도 현재 터키 지역인 당시 소아시아(Asia Minor)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사도행전 21:39),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1, 2, 3)의 주 활동지가 되었던 곳이다.

 

당시 소아시아 지역이었던 터키 서부 내륙에는 신약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위치하고 있었다. 에베소(에페수스), 서머나(이즈미르), 버가모(베르가마), 두아디라(아키사르), 사데(살리히리), 빌라델비아(알라세히르), 라오디게아(라오디케아)가 있었다.(요한계시록13)

 

역사학자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스데반 순교 이후(AD 37~42) 예수의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었는데, 사도 요한과 바울은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에베소에 와서 갖은 박해를 무릅쓰고 초기 일곱 교회를 개척하고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한다.

 

당시 소아시아 지역이었던 터키 서부 내륙에는 신약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위치하고 있었다.  


(에베소)는 기원전 11세기에 이오니아인인 그리스 아테네의 카드로스의 아들 안드로클로스에 의해 점령되었고 그에 의해서 해안가에 그리스 신들과 아테나와 아폴로 신전이 있는 전형적인 이오니안 도시가 건설되었다. 1863년 영국인 우드(JT Wood)가 처음 고고학적 발굴을 한 후, 수십 년 만에 에베소 구시가의 전모가 모두 밝혀지게 되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