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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장사는 끝났다

돈 없어도 가는 교회

홍천뉴스투데이편집국 | 기사입력 2018/03/30 [18:57]

십일조 장사는 끝났다

돈 없어도 가는 교회

홍천뉴스투데이편집국 | 입력 : 2018/03/30 [18:57]
나는 예언의 은사와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럼에도 십일조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한가지는 분명하게 예측할 수 있다. 한국 개신교의 십일조 장사는 이 세대가 가기 전에 곧 끝날 거라는 사실이다.

물론 십일조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 정신은 아름답고 귀한 것이다. 구약의 십일조는 근본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고, 이웃과 나누고, 그리고 동시에 성전 제사 제도를 유지하던 이스라엘 신정 국가 율법의 큰 기둥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어느 특정 개인이 스스로 자원하여 교회에 자기 수입의 십분의 일을 낸다면 나는 결단코 그것을 반대할 맘이 전혀 없다. 아니 오히려 그 귀한 마음에 따뜻한 격려를 보내며 기쁘게 지지할 것이다. 십분의 일이 아니라 십분의 구라도 좋다. 나는 신자 스스로 기꺼이 자원하여 내는 돈이라면 그 어떤 헌금이라도 적극 찬성한다.

그럼에도 나는 공교회가 십일조를 의무화하여 신도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절대 반대한다. 그 이유는 그게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며 옳지 않기 때문이다.

율법주의자들은 십일조가 폐지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지금도 성경대로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한 기만이다. 유대 성전과 제사장이 사라진 현대 교회에서 ‘성경의 명령’ 그대로 토지 소산을 가지고 성전에 가서 십일조를 바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 돈으로 바치는 십일조란 없다. 그 시대에도 지금처럼 돈은 있었지만 십일조는 반드시 현물로 바쳤다.

목수 예수님은 물론 어부와 세리였던 제자들과 초기 교회도 하지 않은 율법의 십일조를 현대 성도들에게 수량적으로 정하여 강요하는 건 지극히 부당하다. 구약 십일조는 본래 토지 소산이 있는 사람만 바칠 수 있었다. 따라서 목수나 세리나 이발사 등 서비스업 종사자는 십일조를 바치지 못 한다. 물론 월급을 받는 노동자나 토지가 없는 어부도 십일조 대상이 아님은 당연하다.

반면에 신약 교회에서는 자원적 '연보'만이 유일한 헌금이다. 이게 오늘날 전세계 거의 대부분의 교회가 십일조를 공식적으로 폐지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도 한국교회만이 유일하게 ‘십일조 왕국’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제 성도들도 점차 진실을 알기 시작했다. 진실보다 더 강한 교리는 없다. 그래서 중세식 짝퉁 십일조를 불법 복제한 한국식 십일조 장사는 이미 끝을 향해 나가고 있다. 아마 다음 세대에는 오직 이단이나 사이비 종파에만 십일조 강요가 존속할 것이다.

세상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 성장기를 틈탄 무분별한 교회당 건축 신화가 끝장나고 있는 것처럼 직업 종교인들에 의해 주도된 십일조 신화도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교회 세습 신화, 목회 독재 신화, 그리고 재정 비리 신화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과거 종교개혁 시대에 중세 교회의 부패를 탄핵했던 개신교가 지금은 도리어 자기 개혁을 강요 받고 있다. 성직자 중심, 건물 중심, 예배 중심, 주일 중심, 그리고 성장 중심의 교회가 마침내 성경에서 벗어난 자기 모순의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피할 수 없는 새 시대의 준엄한 요구다.

지금은 교회당의 촛대가 흔들리는 시대다. 그러니 성도들이 스스로 촛불을 들어야 한다. 이제 성도들이 교회의 주체가 되어 예수 십자가의 정신을 회복하자는 '성도 중심'의 새로운 교회가 뜨겁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2:16).”
 
전자책 무료 다운로드: <십일조 장사는 끝났다> 개정판, 150페이지.
 

  
▲ 한국교회만이 유일하게 ‘십일조 왕국’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제 성도들도 점차 진실을 알기 시작했다. 진실보다 더 강한 교리는 없다. 그래서 중세식 짝퉁 십일조를 불법 복제한 한국식 십일조 장사는 이미 끝을 향해 나가고 있다.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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