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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이러고도 교회인가?

임종석 | 기사입력 2018/03/20 [12:56]

한국교회, 이러고도 교회인가?

임종석 | 입력 : 2018/03/20 [12:56]
공인인 목사는 사모가 독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사건이 미투운동의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게 했다. 한 도의 지사가, 그것도 유력 대선주자였고 대통령을 꿈꾸고 있는 그가 그 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데에 국민들은 격분하며 배신감으로 치를 떨었다.

정치권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달랐다. 안 전 지사의 소속 정당인 민주당은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재빠르게 그의 출당, 제명 조치를 취하는 신속성을 보였다. 그런데 전광석화와도 같은 그 발 빠른 행보는 오히려 사건으로 인한 불똥이 당으로 튀는 것을 미리 차단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어 그 순수성이 의심을 받게 했다.

제1야당인 자한당은 어떤가. ‘돼지 흥분제 이야기’의 장본인 홍준표 대표는 ‘미투운동을 좀 더 가열 차게 해서 좌파들이 좀 더 많이 걸렸으면 좋겠다’ 했고, 장제원 수석 대변인은 ‘민주당이 국민들께 진심으로 사죄한다면 충남지사 후보를 공천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필자를 포함한 목사들도 이 같은 정치권을 향해, 그리고 미투운동 전개에 대해 할 말이 있을까 싶다. 필자로서는 입은 있으나 말은 할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을 해야 한다면 회개부터하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 보도를 통해 성락교회 김기동 목사의 행태를 들여다보자. 그는 자신이 목회자 부부를 대상으로 펴낸 수필집에 스스로의 성에 대한 인식을 이렇게 적고 있다. “목사는 공인이다, 사모가 독점할 수 없는 사람이다.” “아내에게는 남편의 성적 요구를 거절할 권리가 전혀 없다.”

이와 연관 지어 성락교회의 한 여신자가 김 목사에 대해 한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사모님하고 성관계를 할 때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갑자기 이렇게 키스를 하시는 거예요.”

한 언론은, ‘김기동 목사 부자가 한 모녀와 동시에 관계를 맺었다.’ ‘일반 신도뿐만 아니라 목회자와도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미성년자를 성폭행했다’는 등의 주장을 보도하기도 했다. 그의 왜곡된 성 인식이 낳은 죄악상이 아닌가 하는데, 어떤지.

이와 같은 일들이 불거져 문제가 커지자 성락교회 교인들은 스스로 자체 설문조사를 했는데, 교인 100명 가운데 6명꼴로 교회에서 성폭력을 당했고 목사에게 직접 피해를 당했다는 신자도 13명에 달했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왜곡된 성인식으로 여신자들을 농락한 호색한이 목사라는 가면을 쓰고 한 설교 한 토막의 내용을 들어 보자. ‘주의 종의 비리를 드러내면 하나님을 욕보이는 거다. 자손 대대로 저주받아서 교통사고 나서 일찍 죽더라’. 악할 뿐 아니라 유치하기까지 한 겁박으로 호색한다운 말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목사를 보고 호색한이라니 너무 한 것 아니냐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김기동 목사는 이미 교계에서 이단으로 낙인이 찍힌 자인데, 일반 목사들과 교회들을, 그 또는 그의 교회와 한 선상에 올려놓고 말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목사라 해도 호색하는 자는 호색한이고, 호색한은 목사가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김기동과 그 교회가 이단일지라도 교회 밖에서는 그와 그 교회도 그냥 목사요 교회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기생식물의 숙주(宿主)가 되어서야
 
그건 그렇고, 그렇다면 이단 아닌 일반 교회와 목사들은 어떤가. 수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낯이 뜨거워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없었던 듯 덮어 두었다가는 그 같은 일이 언제 어디서 전염병처럼 다시 도질지 모르는 일이므로 경각심을 불러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사건의 실상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에서 무슨 일이 저질러지고 있는지 모를 일 아닌가.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은 선교지에서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피해 여성의 바지에 손을 넣는가 하면 가슴을 만지기도 하고, 가슴이 작다며 성희롱을 했다는 것이다. 일상을 탈출하여 해방감을 즐기기 위해 하는 여행에서는 도덕심이 해이해져 일탈행위를 할 위험성이 커진다 하는데, 그는 선교여행도 그 같은 여행쯤으로 여겼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무엇보다 목사라는 신분은 어디에 팽개쳐 두었던 것이었을까.

교회는 그의 성추행 주 아지트가 되었다. 새벽기도 후 피해 여신자를 당회장실로 불러 몹쓸 짓을 하려다 실패하자 … (이어지는 내용은 너무도 민망하여 차마 끝까지 쓰지 못하니 이해해 주기 바란다). 어쨌든 그런 그는 안마 전문가인 피해 여성에게 안마를 받으며 ‘옷을 벗고 다리를 올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희롱하는가 하면, 예비신부가 결혼 주례를 부탁하러 가자 문을 잠그고 자기를 ‘안아 보라’며 가슴을 만지고는 ‘결혼하고 찾아오면 성 체위를 가르쳐 주겠다’ 희롱했다. 한번은 주일 예배 중에 영상설교를 틀어 놓고 강대상 옆의 커튼 뒤에서 여신도에게 성희롱과 함께 성추행을 시도하기도 했다.

교회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니 믿기지 않지만, 그리고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이와 관련된 재판에서 “피고는 담임목사의 지위를 이용하여 장기간 다수의 여성 신도들인 피해자들을 상대로 성추행 및 성희롱을 하여 온 것으로 인정된다”는 법원의 판결까지 내려졌으니 어쩌겠는가.

그런데도 전병욱 목사 그는 이 같은 문제로 교회를 쫓겨나는 마당에서까지 18억 원의 전별금을 요구하는 뻔뻔함을 보여 주었다. 18억 원이라면 당시 삼일교회의 1년 예산을 상회하는 금액이라 하니 뻔뻔함을 넘어 뇌구조를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이다.

이해하기 힘든 건 그 같은 목사뿐이 아니다. 교회도 피장파장이다. 그런 그에게 전별금 10억 원과 사택 전세보증금 3억 원 등 총 13억 원을 들려서 보냈다 하니 말이다. 죄를 짓고 쫓겨나는 그를 마치 무슨 위대한 일이라도 하고 부득이하게 떠나는 사람을 환송이라도 하는 것처럼 해 주었으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교회뿐이 아니다. 삼일교회가 소속되어 있는 평양노회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노회 재판국은 전 목사 성추행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소극적으로 일관하며 수년 동안이나 미적대다가 겨우 내린 징계가 ‘공직정지 2년과 설교중지 2개월’이었다. ‘공직정지’는 전 목사가 담임목사직을 유지하는 데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 그에게 있으나 마나한 징계이고, 고작 ‘2개월’이라는 ‘설교중지’도 마음만 먹으면 편법으로 무력화 하는 게 가능하다 하니 이런 것을 징계라고 내어 놓은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대 놓고 전 목사의 편들기에 나섰다고 밖에 달리 무슨 이해를 어떻게 더 할 수 있겠는가.

노회는 이보다 전에 이미 전 목사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과도 같은 결정을 내린 일이 있다. 삼일교회에서 쫓겨난 그가 다시 시작한 홍대새교회를 노회 소속 교회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게 무슨 기독교인가. 세상 법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엄격해야 할 교회(노회)법이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것처럼 제멋대로요, 곯아 떨어진 홍시보다 더 물러터졌으니 이러고도 기독교요 교회인가.

하기야 면죄부를 준 노회와 그것을 받은 전 목사만을 나무랄 일은 못 된다. 전 목사가 아무리 교회개척이라는 깃발을 들고 나섰다 해도 교인들이 모여 주지 않았다면 홍대새교회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어땠는가. 전 목사의 성추행 비난 방어에 홍위병처럼 나서기까지 했지 않았는가.
 

  
 
 
장로도 권사도 대가를 지불하고 됐다면 매관매직의 벼슬이 된다
 
필자가 가까이 알고 지내는 몇 안 되는 목사 가운데에도 성적으로 문란한 이가 둘이나 있다. 문교부(지금의 교육부) 파견으로 일본에 체류할 때였다. 동갑내기 목사한테 편지가 왔다. 자기는 결백한데 불륜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바로 답신을 보냈다. 이미 지나간 불륜의 사실여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 어떠한 마음 상태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라도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니 만약 그게 사실이라 해도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고 그와 완전히 단절했다면 그 이상 무엇을 어떻게 더 하겠는가 라는 답장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임기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귀국한 필자는 다시 유학을 위해 단신으로 일본에 갔고, 몇 년 후 아내와 아이들은 사정이 있어 그가 시무하는 교회로 옮겨 가게 되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필자도 선택의 여지없이 그 교회의 교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러고 얼마 안 있어 그는 어느 읍 소재 교회 목사와 자리를 맞바꿨다. 그의 매형이 그 교회 유력한 장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매형 장로는 처남 목사가 자리를 바꿔 옮겨 가자 자기도 다른 교회로 옮기고 말았다. 그 처남에 그 매형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목사는 옮겨 간 교회마다에서 불륜을 저질렀고, 결국 말수가 적고 얌전하기로 평판 좋은 사모와 이혼까지 하고 말았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그런 그가 훗날 필자에게 ‘향기 주는 사람’이라는 닉네임으로 메일을 보내오곤 했다는 사실이다.

또 한 사람의 목사는 젊고 예쁜 여자만 보면 이성을 잃은 듯했다. 출석 교인 수가 육칠백 명을 넘는 교회이다 보니 그의 눈길을 끌만한 여신자는 많았다. 조금만 빈틈을 보여도 집적거렸다. 그것을 안 젊은 여신자들은 거리를 두려 애를 썼으나 넘어간 여자도 있었다. 한 번은 한밤중에 기도하러 교회에 갔던 교인이 목사와 젊은 여자가 기도실에서 같이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두 사람은 이미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교회에 쫙 퍼져 있었을 때였다. 여자는 사모를 질투하는 추태까지 보이기도 했다.

안 되겠다 싶어 교인 몇 사람이 알아본 결과 목사가 비디오 가게에서 포르노 테이프를 빌려다 보곤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자 그는 중학교에 다니는 자기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대고 빌려다 본 것이라 둘러댔다. 중학생 아들은 아버지를 잘못 둔 죄로 졸지에 야동이나 보는 음란한 청소년이 되고 말았다.

이제까지 살펴본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추행이나 불륜의 당사자들은 그 한 가지만이 아닌 복합적 죄악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교회세습으로 한국 교회에 오물을 끼얹은 김삼환 목사의 명성교회를 보라. 거액의 비자금 문제로 파문을 일으키더니, 이제 장로가 되는 데에는 3천만 원, 권사와 안수집사가 되는 데에는 3백만 원 이상으로 매관매직을 했다 하여 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지 않은가. 이러다보니 교회를 가리켜 비리의 온상이니 뭐니 하고 떠들어대는 개탄스러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장로나 권사가 무슨 벼슬이라고 매관매직이라 하느냐, 너무한다, 하지 말기 바란다. 물론 이들 장로나 권사, 안수집사는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뽑는 일군이다. 그러나 그 임직을 위해 무슨 명목으로가 됐건 돈을 냈다면 벼슬이 되고 따라서 매관매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해서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된 사람들은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목에 힘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직에 드는 모든 비용은 전액을 교회가 부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어떤가. 성심으로 수고해 달라는 뜻으로 작은 선물이라도 들려 준다면 더 좋을 것이다. 일군이 벼슬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리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누구도 하나님의 대리인은 될 수 없다
 
원하건 원치 않건 교회는 담임목사의 목회성향이나 영향력에 따라 운영되어 갈 수밖에 없다. 교회가 배라면 목사의 포지션은 선장의 그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혜로운 선장은 자기의 생각만을 고집하지 않고 선원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인다. 선장도 신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원들도 안전한 항해를 위한 선장의 말을 거역하면 안 된다. 그러나 배가 산으로 가려 하면 막아야 된다. 살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선장이 듣지 않으면 끌어내려야 하고, 그게 안 되면 자기라도 하선해야 한다.

앞에서 김기동 목사 설교내용의 한 구절인 ‘주의 종의 비리를 드러내면 하나님을 욕보이는 거다. 자손 대대로 저주받아서 교통사고 나서 일찍 죽더라’라는 말을 소개했다. 교인들은 그런 협박성 사기에 넘어가면 안 된다. ‘주의 종을 마음 아프게 하고도 제대로 사는 사람을 못 봤다’. ‘주의 종을 잘 섬기면 축복을 받는다’. ‘교회를 버리고 떠나면 하나님의 벌을 면치 못한다’. 등등의 사기성 설교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하나님의 말씀선포라고 포장되어 지껄여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믿는 것은 새 생명을 잃는 사기를 당하는 것이다. 목사가 하나님의 종인 것은 맞다. 그러나 목사만이 아니다. 교인 모두, 그리니까 믿는 사람 모두가 하나님의 종이다. 하나님의 종이고, 자녀이고, 일군이고, 그의 백성이며, 하늘나라의 왕자요 공주이다.

할 말이 있으면 하고, 정 안 되겠거든 떠나라. 그러나 생각하고 또 생각한 뒤 말하고 행동하라. 모든 일을 함부로 하지 말고 말씀에 비춰 지혜롭게 하라. 자기의 언행에 책임지는 것이 인격체로서의 신앙인이다.

목사, 그들 자신에게는 자정능력이 없다. 교인들이 깨우쳐 주어야 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떠나야 한다. 떠나도 결코 벌을 받는 일은 없다. 하나님의 교회이기를 포기한 교회를 뒤로 하고 보다 하나님의 교회다운 교회를 찾아 간다면 벌이 아니라 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내 영혼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 이러고도 교회인가!’라는 탄식이 절로 나게 하는 우리의 현실을 ‘과연 한국 교회는 달라!’라는 칭송으로 바뀌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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