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석춘 칼럼
영화<1987>과 나
용석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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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29 [21:5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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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1987>과 나    

▲  영화<1987>     © 홍천뉴스투데이편집국

연초에 아내와 함께 영화<1987>를 봤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내가 85학번인데 그때 정말 그런 고문이 있었나?’ 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내기고, 같은 시대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던 아내가 30년 전의 일들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내를 다구 치지는 않았다. 20분 전에 영화관을 빠져 나온 우리 부부는 영화<1987>에서 국가폭력에 의해 두 청년들의 억울한 죽음을 목도했다. 그리고 동시대의 아픔을 공감하며 영화라는 환영 속에 잠시 미안함과 숭고함이 교차됐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고 영화 속에나마 잠시 공감할 뿐, 이내 방관자가 되고 변할 것도 없는 일상에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내의 형편이고 나의 솔직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억 속에 묻혀 있던 30년 전 그날의 봉인을 해제시켰다. 1987년 6월, 필자의 기억은 굳이 영화로 되새김질 할 필요도 없이 가슴과 뇌리에 각인된 영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내 손에는 익숙하게 옴켜쥔 화염병이 있었고 최루탄 연기 속에 피아를 구분 할 수 없었다. 병원 언덕길과 대학정문에 대치한 학생들과 전투경찰들의 아수라장 같은 모습들이 그려진다. 눈물 콧물로 외쳐댄 ‘독재타도! 호헌철폐!’ 이 네 마디를 절도 있게 부르짖었던 구호들은 뜨거운 동지애로 어깨동무를 함께 했고, 뜨거운 함성은 담장을 무너트렸다.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춘천 팔호 광장으로 집결했다. 6월 민주항쟁이었다. 한국인만이 공감할 수 있는 민주화운동이 매우 각별한 시공간에서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동시에 솟구쳐 발원되었고 우리들은 이후 교도소 담장을 넘나들기도 했다. 영화 <1987>은 정의와 불의에 대하여 예스, 노를 분명히 할 수 있었던 우리들의 모습이었고 586세대인 나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영화 <1987>은 국가폭력에 의한 억울한 죽음을 알리려는 노력과 이를 막으려는 시도, 그리고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의 여정이다. 필자는 영화 속에서 두 가지가 기억되었다. 한 가지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전말을 재야에 처음 알린 영등포 교도소 교도관의 모습이었고 둘째는 ‘빨갱이 잡는 걸 방해하면 모두가 빨갱이이야’ 라는 박처언 치안감의 서슬 퍼런 모습이었다.    

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1982년 미 성조기 방화사건과 연계해 수배 중이던 친구를 자신의 집에서 수일을 은닉하다 수사가 좁혀오자 시골에 비어있던 농가로 이동해 오랫동안 검거를 피했던 일이 있었다. 체구가 작았던 그의 친구가 서슬 퍼런 군사정권하에서도 당당하게 세상의 불의한 일을 전하고 정의를 주장하는 것에 그 친구는 친구가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그가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은 무조건 그를 보호하고 숨기는 일이었다고 한다. 친구는 이듬해 농민운동과 관련해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자신이 군인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부대원 90% 이상의 서명을 받아 재야단체에 이를 넘겼다. 이 일로 친구는 보안사에 긴급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고 제대 후에도 용공분자인양 블랙리스트로 관리되었다. 그가 복무했던 부대는 빨갱이부대로 큰 곤욕을 치렀다. 필자는 영화<1987>에서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알리고 결국 고문까지 당한 교도관의 모습과 그 친구가 오버랩됐다. 197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와 19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에 맞서 독재타도를 외치고 잡혀간 무명의 민주투사는 부지기수였다. 영화속 교도관 같은 숨은 자의 헌신이 있었기에 이 땅에 민주화는 앞당겨졌고 덕분에 우리가 민주정치를 누리고 있다.

이제 독재와 폭력의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민주주의 가치를 핵심에 둔 싸움에 여전히 민주화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을까? 최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신년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를 여전히 주사파로 사회주의 정부로 비판했다. 이에 대해 친 보수인 하태경 최고의원조차 홍대표를 향해 여전히 “빨갱이 장사에 질리지도 않느냐”고 지적했다. '빨갱이'로  수십년을 울겨먹는 이들로 아직까지 민주화는 미완의 진행형이다.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격동적인 민주화 운동이 펼쳐진 <1987>은 2017년 촛불혁명과 다르지 않다. 시민광장을 밝힌 천만시민의 힘은 무도한 권력자를 내쫒았고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켰다. <1987>은 직접선거라는 정치적 자유 확대가 있었다면 <2017> 촛불은 박근혜 퇴진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의실종과 부의 대물림, 양극화 심화에 대한 검찰과 재벌, 언론, 정치 적폐의 전면적인 청산작업이다. 과제는 산적해 있고 저항은 훨씬 더 거세게 방어하고 있다. 체게바라는 “혁명은 다 익어 저절로 떨어지는 사과가 아니다. 떨어뜨려야 하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제 과감하게 청산하는 일만 남았다.

용석춘 홍천뉴스투데이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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