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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절망의 사선(死線) 넘어 홍천에 핀 생명의 꽃... '먼저 온 통일'을 품다

김춘미 집사의 탈북 간증과 홍천군의회 '탈북민 지원 조례'가 던지는 시대적 화두

용석준 기자 | 기사입력 2026/04/06 [13:17]

[기획칼럼] 절망의 사선(死線) 넘어 홍천에 핀 생명의 꽃... '먼저 온 통일'을 품다

김춘미 집사의 탈북 간증과 홍천군의회 '탈북민 지원 조례'가 던지는 시대적 화두

용석준 기자 | 입력 : 2026/04/06 [13:17]

 



오늘날 한국 사회와 교회가 직면한 가장 아픈 손가락은 사선을 넘어 우리 곁으로 온 탈북민들이다. 최근 홍천조선선교교회(목사 노옥실)에서 전해진 김춘미 집사의 간증은 단순히 한 개인의 고난 극복기를 넘어,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이 회복해야 할 신앙의 본질과 지방정부의 존재 이유를 준엄하게 묻고 있다.

 

굶주림과 인신매매의 터널을 지나 만난 ‘하나님’

 

김춘미 집사의 삶은 그 자체로 현대사의 비극이었다. 북한 ‘고난의 행군’ 시절 겪은 극한의 허기와 중국에서의 인신매매, 그리고 소아마비 남편과의 고단한 삶은 인간의 존엄마저 앗아갔다. 그러나 북송의 위기 속에서 터져 나온 “하나님 살려주세요”라는 본능적 구조 요청은 그녀의 운명을 바꾸었다. 라오스와 태국을 거치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 하나님은 그녀와 어린 아들을 지키셨고, 마침내 자유의 땅 대한민국으로 인도하셨다.

 

홍천군의회 용준순 의원이 쏘아 올린 ‘희망의 조례’

 

주목할 점은 이러한 개인의 신앙적 승리가 지역 사회의 정책적 결단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홍천군의회 용준순 의원이 발의한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조례’는 매우 시의적절하며 신학적으로도 ‘환대(Hospitality)’의 정신을 실천한 사례다.

 

필자가 시론에서 언급했듯, 이 조례는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선다. 용준순 의원은 탈북민을 우리 사회의 빈자리를 채울 ‘적극적 통일 행위자’로 정의했다. 인구 소멸의 위기 앞에 선 홍천군에 있어, 사선을 넘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탈북민들은 지역 공동체를 재건할 소중한 인적 자산이자 미래인 것이다.

 

신영재 군수의 결단, 인구 소멸 위기의 ‘돌파구’

 

신영재 홍천군수의 행정적 뒷받침 역시 높이 평가할 대목이다. 지방소멸이라는 거대 담론 앞에서 탈북민들이 홍천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주거와 일자리를 지원하는 것은, 홍천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실질적인 전략이다.

 

김춘미 집사가 한국 정착 초기 겪었던 정서적 방황은 공동체의 안전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신 군수와 홍천군이 조례를 통해 자활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은, 외지인을 배척하는 닫힌 공동체가 아니라 고난받는 이들을 품는 ‘생명의 도시’로 나아가는 위대한 첫걸음이다.

 

한국 교회와 정부에 드리는 제언

 

김춘미 집사의 간증과 홍천군의 정책적 움직임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과제를 던진다. 첫째, 정부는 탈북민을 인구 위기 극복의 핵심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 홍천군의 사례처럼 기초지자체 단위에서 실질적인 정착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국적인 정책 확산이 필요하다.

 

둘째, 한국 교회는 이들의 영적 고향이 되어야 한다. 김 집사가 성경 통독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을 회복했듯, 교회는 시혜적 태도를 버리고 이들을 진정한 형제로 환대해야 한다.

 

소망의 노래를 마치며

 

탈북민 한 사람을 온전히 정착시키는 일은 무너져가는 지방의 인구 절벽을 막는 길이며, 다가올 통일 시대를 미리 연습하는 거룩한 사명이다.

 

절망의 끝에서 하나님을 만난 김춘미 집사가 이제 홍천의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신영재 군수와 용준순 의원이 마련한 ‘희망의 멍석’ 위에 온 군민과 성도가 함께 손을 맞잡아야 한다. 낯선 이웃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을 때, 홍천은 소멸의 위기를 넘어 통일 한국의 심장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방향이다.

 

용석준 기자 

홍천뉴스투데이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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