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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와 교회가 직면한 가장 아픈 손가락 중 하나는 바로 사선을 넘어 우리 곁으로 온 탈북민들입니다.
최근 홍천조선선교교회(목사 노옥실)에서 전해진 김춘미 집사의 간증은, 단순히 한 개인의 고난 극복기를 넘어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회복해야 할 신앙의 본질과 시대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준엄하게 묻고 있습니다.
고난의 풀무질 속에서 발견한 보배 ... 김춘미 집사의 탈북 일기
김춘미 집사가 걸어온 길은 그 자체로 거대한 고난의 파노라마였습니다. 80년대 후반 북한에서 태어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그녀에게 삶은 곧 처절한 생존 투쟁이었습니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두만강을 넘었고, 중국에서 인신매매라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소아마비 남편과 고약한 시댁 식구들 틈에서 육체와 영혼이 짓밟히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 그녀를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생사를 오가는 북송의 위기 속에서 그녀의 입술을 통해 터져 나온 "하나님 살려주세요"라는 부르짖음은, 비록 당시에는 온전한 신앙의 고백은 아니었을지라도 절박한 인간이 창조주를 향해 던진 본능적인 구조 요청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어 라오스와 태국을 거치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 그녀와 어린 아들을 지키시고 마침내 자유의 땅 대한민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한국 정부의 과제 '생존'을 넘어 '공존'과 '통합'으로
김춘미 집사의 사례는 한국 정부가 탈북민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단순히 물질적인 정착 지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탈북민들이 겪는 트라우마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김 집사가 한국에 온 뒤에도 한동안 하나님을 잊고 세상 유흥에 빠졌던 것은, 극심한 결핍 끝에 찾아온 과잉된 자유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마음의 병 때문일 것입니다.
정부는 이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온전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심리적 치유와 정서적 안정을 돕는 세밀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또한, 김 집사가 '요양보호사'라는 새로운 꿈을 꾸며 자활을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이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주거환경과 교육, 취업 기회를 보장하는 '성장 중심'의 정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사명... '따뜻한 환대'와 '복음 통일'의 마중물
무엇보다 한국 교회의 역할이 막중합니다. 김춘미 집사가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자녀의 날카로운 질문( "엄마는 교회 안 가면서 왜 나만 가라고 해요?")과 이웃 목회자의 진심 어린 섬김이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탈북민들을 향해 '시혜적 관점'이 아닌 '형제적 관점'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김 집사가 성경 통독을 통해 영적인 눈을 뜨고 방언의 은사를 받으며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당당히 선포한 것처럼, 교회는 이들이 영적 정체성을 회복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탈북민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보내주신 '통일의 예행연습'이자 '복음 통일의 마중물'입니다. 이들을 품지 못하는 교회가 어떻게 북한 땅의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소망을 노래하며
김춘미 집사의 고백처럼, 고난의 광야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간증은 지금도 북한 땅에서 고통받는 동포들을 향한 기도의 불씨를 다시 지핍니다. 이제 한국 정부와 교회, 그리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응답할 차례입니다.
절망의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 빛이 되어주고, 상처 입은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보듬는 일, 그것이 바로 이 시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진정한 사명입니다. 김춘미 집사의 삶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한반도 전역에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참고 영상: 김춘미 집사 간증 - https://youtu.be/MI83tZH1qJQ?si=ZvYSLdCUkbYk4MuJ]
용석준 기자 <저작권자 ⓒ 홍천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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