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문제, 신기술과 디지털화, 조기 탈산업화(premature deindustrialzation), 국제질서의 변화, 초세계화(hyper-globalization)¹의 후퇴 등으로 개도국의 ‘수출 주도 산업화 전략’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들어, 그간 선진국 발전전략으로 여겨져 왔던 녹색 전환(green transition)과 내수 의존성으로 인해 도외시되었던 비무역 서비스업(non-tradable services)의 생산성 향상을 개도국 성장전략으로 내놓아 눈길을 끈다.
로드릭과 스티글리츠는 기후 변화와 디지털화라는 두 가지 구조적 변화로 인해 그간 개도국 경제발전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견인해 왔던 제조업과 수출 기반의 성장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박한 기후 위기는 탄소발자국이 큰 상품에 대한 수요 감소를 초래하고, 가속화된 디지털화는 제조업의 성격을 노동 집약에서 기술∙자본 집약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선진국의 노동생산성이 향상되어 낮은 인건비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해 왔던 개도국의 비교우위가 크게 약화됐기 때문이다.
더불어 미∙중 간의 사활적 경쟁과 개도국에 위치시켰던 생산기지를 선진국으로 회귀하는 리쇼어링(reshoring)의 증가로, 개도국 제조업은 저숙련 인력을 거의 고용하지 않는 고립된 부문(enclave sector)으로 전락하고 있다. 더구나 제조 생산량이 자체적으로 잘 유지된 국가와 기업에서조차 고용 비중이 감소하는 추세다. 개도국에서 제조업이 쇠퇴하거나 그 비중이 늘지 않는 조기 탈산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이에 그들은 수출 주도 산업화 전략의 공백을 메울 첫 번째 솔루션으로 녹색 전환을 제안한다. 탈탄소화 주도의 구조적 변화만으로는 과거 산업화가 창출한 만큼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희박함에도 개도국엔 이를 단행해야 하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다. 극심한 기상 이변에 따른 농축산물 손실과 탄소발자국이 큰 상품에 대한 수요 감소라는 이중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향후 수년간 개도국 GDP의 2~4%에 달하는 외부 자원이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² 중국을 제외한 개도국을 대상으로, 국내 조달로 투자수요의 절반을 충족했다는 가정하에서다. 이렇듯 외부 자원 조달이 관건이므로, 녹색 투자 의향이 있는 가계나 기업이 금융에 적절히 접근할 수 있는 국내 메커니즘이 보완되어야 한다.
인도나 필리핀 같은 일부 개도국이 금융서비스나 제조서비스 등 글로벌 경쟁력과 생산성을 갖춘 무역 서비스업(tradable services)을 성공적으로 창출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서비스업이 여전히 전형적인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BPO)³에 머물고 있어 제조업과 마찬가지의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과 개도국 인력 수준을 고려했을 때, 고용 창출 잠재력 측면에서 무역 서비스업이 비무역 서비스업보다 제한적이라 보았다.
다만, 대규모 고용 창출에 내재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세금 부과나 보조금 지원을 통해 적절히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방향성으로는 비무역 서비스업에 종사 인력을 지원하는 인공지능(AI) 등의 디지털 기술 투자와 도구의 활용 장려를 특히 강조했다.
1) 초세계화는 과거엔 볼 수 없던 새로운 수준으로 세계 무역이 급증한 현상으로, 1990년대 활발하게 나타났으며 선진국과 개도국 양쪽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로드릭에 따르면 탈세계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부상과 함께 본격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미중 갈등 등 안보와 지정학적 이슈로 글로벌 공급망이 더 이상 비교우위 원리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2) V. Songwe, N. Stern and A. Bhatacharya, Finance for Climate Action: Scaling up Investment for Climate and Development, November 2022 3) Business Process Outsourcing은 기업의 핵심 업무를 제외한 다양한 비즈니스 활동을 제3자 공급자에게 위탁하는 방식을 말한다.
윤준영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선임연구원 <저작권자 ⓒ 홍천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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