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시대 건설현장, 불법하도급에 ‘똥떼기’ 성행
윤지호기자 | 입력 : 2023/05/22 [22:34]
“티코 타고 출근해서 그랜저 타고 퇴근한다”는 건설현장의 속언은 허언이 아니다. 건설현장의 소장이나 하도급 업체의 중간관리자들이 하도급 과정에서 부조리한 이득을 취하는 현실을 비꼬는 말이다.
발주처로부터 건설공사를 도급받은 시공사(수급인)를 정점으로, 이 공사를 다시 구역별로 나눈 하도급계약을 체결하는 시행사(하수급인)는 다시 공사를 보다 규모가 작은 건설사에 재하도급을 한다. 건설안전기본법은 재하도급을 금지하고 있지만 성행한다. 건설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재하도급을 금지한 법망을 피하기 위한 온갖 편법과 봉건사회를 방불케 하는 상납이 이뤄진다. 건설현장을 지키는 펜스는 사실상 중세의 성벽인 셈이다.
6년간 건설업 불법하도급 970건 최대 처벌은 1년 영업정지 그쳐
21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서울 북부의 한 아파트 재건축현장의 공사비는 약 1조원 규모다. 공사를 발주한 재건축조합쪽이나 수주한 시공사(1군 종합건설사)는 정확한 공사금액을 밝히지 않아 공사규모와 시세 등을 점검한 추정액이다.
대외적으로는 시공사가 공사를 책임지는 것처럼 홍보하지만 실제 공사를 맡은 곳은 다른 건설업체 3곳이다. 이들 업체는 재개발구역 전체를 3등분해 각각의 구역에서 각각 아파트 11~15동을 건설한다.
이들이 직접 공사를 하는 것은 또 아니다. 이들은 공사 분야에 따라 또 다른 업체를 동원한다. 원칙적으로는 이 과정부터 불법이다. 건설산업기본법은 발주처와 건설계약을 체결한 시공사(수급인)와 시공사로부터 다시 공사를 수주한 시행사(하도급인)까지만 도급관계를 인정한다. 그러나 법이 예외를 허용하고 있어 재하도급이 성행한다. 그마저도 지키지 않아 음지에서 구두로 이뤄지는 계약이 많다는 게 건설업계의 증언이다.
재하도급 유형 가운데 가장 많은 건 자격 없는 건설업자에게 맡기는 경우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2017~2022년 7월까지의 불법하도급 현황을 보면 970건 중 668건이 무등록 하도급이었다. 다음을 잇는 게 일괄하도급이다. 일괄하도급은 시공사로부터 하도급받은 공사 전체를 재하도급하는 사례다. 136건이 적발됐다. 종합건설 라이선스를 가진 건설사가 도급받은 공사를 다시 종합건설 라이선스를 지닌 건설사에 건네는 동일업종 간 하도급 사례가 72건, 법률상 예외조항조차 지키지 않은 재하도급 66건, 전문공사를 하도급한 28건 등이다. 이들에 대한 처분은 1년 이내의 영업정지와 하도급 금액 30% 이내의 과징금 부과가 전부다.
하도급이 성행하는 건 공사비 후려치기가 가능해서다. 건설현장 관계자는 “시공사가 시행사에게 하도급을 줄 때 공사비를 적게는 30%, 많게는 50%까지 깎는다”고 말했다. 실제 2021년 참사가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구역 철거 건물붕괴 현장은 철거 공사비가 평(3.3㎡)당 28만원이었지만 도급을 반복하면서 평당 2만8천원으로 줄었다. 서울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1조원대 공사현장에서 공사를 나눠 가진 시공사 한 곳은 약 400억원에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세 개의 시공사가 나눠 가진다고 하지만 400억원이라는 금액은 공사규모에 비해 너무 적다.
직접고용 안 하고 ‘똥떼기’로 인력 수급 노동자 임금 착취해 ‘뒷돈’ 만들고 상납
이런 공사비 후려치기로 배를 불리는 건 정점의 시공사만이 아니다. 시공사와 시행사는 물론이고 불법하도급에 참여한 모든 단위의 관리자들은 중간착취를 통해 상당한 뒷돈을 챙길 수 있다. 이런 중간착취를 건설현장에서는 ‘똥떼기’라고 부른다.
똥떼기가 형성되는 이유는 불법하도급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야 실제 건설노동자를 채용하는 현실 때문이다. 국내 굴지의 대형 건설사는 물론이고 중견기업인 전국단위 전문건설업체들은 시공능력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 시공능력이란 실제 공사를 진행하는 건설노동자를 의미한다. 건설업 라이선스 확보를 위한 건설기술인을 2명 이상 채용하고 있을 뿐 실제 인부는 없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공사가 가능할까. 여기서 팀장 또는 오야지가 등장한다. 실제 현장 노동자를 팀으로 두고 있는 이들은 가장 낮은 단계의 불법 재하도급사와 계약을 맺고 현장에 인력을 공급한다. 이 과정에서 상위 수급인이 인건비 일부를 떼고 하위 수급인 또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전형적인 중간착취뿐 아니라, 상납 형태의 중간착취도 등장한다.
오야지가 건설노동자의 임금 일부를 착복해 자신의 몫으로 남겨 놓고, 이 가운데 일부를 자신을 고용해 준 불법 재하도급업자, 그 아래서 일하는 현장소장 등에게 상납을 한다. 현장소장이 일종의 오야지 중의 오야지가 되는 셈으로, 다시 그들은 건설공사를 수주한 전문건설사의 이사 또는 전무 같은 임원급 관계자들에게 상납금을 챙겨 준다. 이들 이사나 전무는 전문건설사에 신원보증금 같은 돈 수억원을 예치하고 두 곳 이상의 건설사 명함을 챙겨 다닌다. 이들은 실제로는 재하도급업체 소속인 경우가 많다. 명목상 해당 건설사 임원이기 때문에 재하도급 수급인들을 고용한 형태가 되면서 불법하도급 문제를 표면적으로 피한다. 불법 재하도급은 피라미드 같은 형태로 촘촘하게 짜이고, 이 과정에서 한 단계씩 내려갈 때마다 똥떼기가 발생한다. 중세영주의 지대 같은 방식이다.
현장 노동자에게 빨대를 꽂은 이런 중간착취는 건설현장 임금을 노동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대금지급시스템을 도입한 뒤로도 사라지지 않았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가장 최하단의 오야지는 자신과 함께하는 팀원의 통장을 갖고 있다. 대금지급시스템 제출용이다. 통상 20명가량으로 구성하는 형틀팀을 기준으로 보면 형틀팀 목수 20명의 실명계좌를 보유한 오야지가 임금 전액을 각각의 통장으로 받아 챙긴 뒤 노동자의 다른 명의의 통장, 즉 실제 월급통장에 쥐어 준다. 처음 통장에 입금된 액수 중 일부를 오야지가 챙기는 것은 물론이다. 가장 낮은 단계의 중간착취다.
대한건설협회의 임금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형틀목수 하루 평균임금은 24만2천138원이다. 20명에게 이런 방식으로 1만원씩만 챙겨도 연 240만원의 뒷돈이 생긴다. 물론 1만원만 챙기는 것은 양심적인 수준이다. 착복액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절반에 가까운 경우가 다반사고, 그마저도 오야지와 친하거나 말을 잘 듣는 순으로 착복액이 달라진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챙겨 가는 오야지가 한 현장에 10명 남짓이 있고, 이들로부터 현장소장이 돈을 챙긴다고 상상해 보라”며 “해당 현장소장은 공사현장 한 곳만을 맡는 것이 아니니 뒷돈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합원 고용이 ‘똥떼기 근절’ 역할했는데
이런 과정은 결국 건설노동자의 고용과 연결돼 있다. 중간착취와 상납이 이어지지 않으면 노동자도, 오야지도 일을 할 수 없다. 이 돈을 상납받은 업체들은 실제 시공능력은 보유하지 않은 채 건설업 라이선스만 갖고 있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똥을 떼어 간다. 국토교통부의 1월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업역 간 불법하도급 사례 일부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결과 페이퍼컴퍼니만 18곳이 적발됐다. 그러나 이들 페이퍼컴퍼니도 영업정지와 과징금 외에는 단속할 길이 마땅치 않다.
건설노조의 고용 요구는 건설노동자 고혈을 빨아먹는 ‘빨대’를 자르는 역할을 했다. 고용이 안정되니 뒷돈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북부 건설현장의 한 건설노조 간부는 “건설노조는 고용안정 활동의 결과로 채용된 현장 건설노동자는 뒷돈을 오야지들에게 주지 않는다”며 “오히려 유급휴가를 18일까지 확대하고 보건휴가를 정착시키고 있어 불법하도급업자들에게는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런 방식은 그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른 임금·단체협약으로 가능했다. 아파트 같은 건설공사는 우선 철거를 하고, 공사현장의 펜스를 설치한 뒤 땅을 파기 시작한다. 이후 타설과 철근·콘크리트 작업을 하고 건물을 올린다. 건설노조는 건설현장에서 임단협을 체결하고 고용협약에 따라 조합원으로 구성된 팀이 일을 시작한다. 서울북부 건설현장에도 형틀목공 1개팀(20명)이 가장 먼저 일을 시작했고, 이어 철근·콘크리트와 해체·정리, 타설, 시스템 등 150여명이 일을 하고 있다. 이곳 노조 관계자는 “노조가 없었으면 챙길 수 있었던 뒷돈의 규모는 가늠이 어려운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이곳 현장에서 또 다른 불법하도급 업체 없이 시행사와 직접 교섭을 했다. 현재는 공사 기간이 해를 넘겨 퇴직금도 지급받을 수 있는 상태다. 노조가 없었을 때 건설현장에서 퇴직금은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다고 한다.
조합원 고용 요구 등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정부와 경찰이 강경대응하고 있는 요즘은 분위기가 다르다. 이 간부는 “국토교통부와 정권 차원의 탄압으로 민주노총이라고 하면 나가라는 분위기”라며 “아직 이곳은 큰 갈등이 없지만 수년 전에 공사를 이미 마친 곳에서 갑자기 소환조사를 요구해 조사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빈자리에 고용한 이주노동자, 불법하도급 ‘구렁텅이’로
건설노조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채우는 이들은 이주노동자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지난해 11월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외국인 건설업 종사자는 10만200명이다. 이는 미등록 인력을 제외한 수치다. 약 30만명가량으로 본다. 노조는 조합원을 8만명가량으로 밝히고 있어, 이미 규모면에선 열세다.
이주노동자들은 건설현장의 가장 하층민이다. 건설공정이 지상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대부분 공정을 도맡아 한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각국의 노동자와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국가 노동자까지 들어온 상태다. 이미 잔뼈가 굵은 이주노동자는 오야지의 지위를 갖고 내국인 오야지와 같이 똥떼기에 동참한다.
건설노조 간부는 “이들의 임금은 매우 낮기 때문에 불법하도급의 구조상 이익을 내기 쉬운 구조에 있다”며 “후려치기로 낮아진 공사비로 시공을 하기 위해선 이들의 존재가 필수라서 사실상 공생관계”라고 설명했다. 건설노조가 높인 현장의 처우와 임금이 이들의 참여로 무너지거나 균열이 생기는 셈이다. 건설노조가 “불법 고용 근절”을 촉구하는 이유다.
이런 현실은 관에서도 알고 있다고 한다. 이 간부는 “건설현장 불법 고용자를 확인하고 출입국관리소에 전화해도 조사를 나오지 않는다”며 “시위나 집회를 해야 한 두 번 나와서 몇 명 정도 적발해 가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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