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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이상기온 ‘직격탄’.. 양봉농가 고심

윤지호 기자 | 기사입력 2023/05/22 [12:17]

봄철 이상기온 ‘직격탄’.. 양봉농가 고심

윤지호 기자 | 입력 : 2023/05/22 [12:17]



봄철 이상기온으로 벌 활동량이 줄면서 양봉업계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다. 아카시아꽃이 한꺼번에 피고 급하게 지자 채밀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남부지방은 이달초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채밀 적기마저 놓치고 말았다. 20일 ‘세계 벌의 날’을 맞아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전국 곳곳의 양봉 환경을 긴급 점검해봤다.

 

◆양봉농가에 직격탄 날린 변화무쌍한 봄 날씨

 

“안 그래도 벌 상태가 좋지 않아 죽어가는 것들이 많았는데 날씨마저 변덕스러워 하늘이 원망스러워요.”

양봉농가들이 본격적인 채밀기를 맞고서도 꿀 생산을 못해 이렇게 하소연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변화무쌍한 봄 날씨가 꼽힌다. 최근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밀원수의 꽃이 예년보다 일찍 폈다가 바로 져버렸다.

 

양봉농가의 말을 종합해보면 꿀 생산량의 70∼80%를 차지하는 아카시아꽃이 올해는 전국적으로 평년보다 10일가량 빨리 펴 남부지방은 이미 4월말∼5월초에 꽃망울을 터뜨렸다.

 

김봉성 한국양봉협회 경남지회 사무국장은 “평소 같았으면 남부지방에서 5일경 아카시아꽃이 피기 시작해 차츰 북상하고, 양봉농가는 그 시기에 맞춰 북쪽으로 이동하며 채밀하는데, 올해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아카시아꽃이 한꺼번에 폈다”면서 “그만큼 채밀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졌다”고 설명했다.

 

김봉현 한국양봉농협 영남사업소장은 “일찍 핀 꽃이 이후 저온으로 상당수가 시들어버렸고, 어린이날을 전후해 연일 비가 내려 벌의 활동량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경기지역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장성범 한국양봉협회 경기지회 사무국장은 “온난화에 따른 기온 변화로 아카시아꽃이 한꺼번에 피고 급하게 지는 현상이 나타났다”면서 “지금은 연천이나 강원지역 일부에서나 채밀 작업이 가능한 상태”라고 전했다.

 

남부지역은 집중호우가 피해를 키웠다. 전남 나주의 한 양봉농가는 “아카시아는 5월 첫주에 꿀을 따야 하는데 4일간 호우가 내리면서 그 기간 벌이 꿈쩍도 안했다”고 말했다.

 

전북지역은 전체 양봉농가 1723가구 가운데 1078가구서 피해를 봤다. 날씨가 따뜻해 봄이 온 줄 알고 밖에 나간 꿀벌이 추위로 죽거나 돌아오지 못해 벌통 속 벌은 평소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여기에 응애 피해까지 겹쳤는데, 이젠 꽃까지 피지 않아 농가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월동 기간 160억마리 실종…채밀량 급감 전망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올해 봄 벌 깨우기를 마친 결과 지난해 월동 과정에서 82만3188봉군에서 꿀벌이 사라졌다. 봉군당 2만마리가 산다고 가정했을 때 160억마리 이상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채밀 기간이 짧아진 것은 물론 벌 개체수가 급감하면서 벌꿀 생산량도 크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양봉농협 영남사업소는 평소 같았으면 5월 중순까지 농가로부터 500드럼(1드럼당 약 288㎏)가량을 수매했는데, 올해는 15일 기준 수매량이 100드럼 정도에 그쳤다.

 

전북 군산에서 5년차 벌을 키우고 있는 김상욱씨(47·대야면)는 “지난해 130봉군까지 키웠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30여봉군에 불과하다”면서 “남은 벌통도 꿀이 얼마나 찰지 몰라 사실상 올해 농사는 망쳤다고 봐야 한다”며 장탄식을 했다.

 

이승우 한국양봉협회 충남지회장은 “지역 꿀벌 생산량이 평년의 3분의 1 토막 났다”며 “이미 채밀이 끝나가는 시기라 상황이 나아지길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동 양봉으로 벌꿀농사를 짓고 있는 김종인씨(63·전북 완주군 경천면)는 5월9일까지 열흘간 경남 진주에 가서 양봉작업을 했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그는 “보통 20ℓ들이 말통으로 45∼50개 나오는데 이번엔 6개 정도밖에 수확하지 못했다”며 “이동 경비조차 나오지 않았다”며 허탈해했다.

 

양봉농가들은 이번 피해를 재해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천재 한국양봉협회 광주지회장은 “광주광역시·전남은 지난해 벌 폐사율이 64%에 달해 농가 피해가 컸는데 이번에는 이상기후로 생산량이 급감해 양봉농가들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이번 피해에 이상고온과 집중호우와 같은 날씨 변수가 작용한 만큼 재해로 인정해주는 게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익수 한국양봉협회 강원지부장은 “이상기후, 응애 피해, 벌 집단 폐사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올해처럼 꿀벌 생산량이 급감한 적이 또 있나 싶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밀원수 식재에 적극적으로 나서 이동 양봉을 하지 않아도 꿀밭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 중장기 대책을 내놓으라”고 주문했다.

 

벌꿀 수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종화 한국양봉협회 전북지회장은 김제지역에서도 양봉을 하는데, 예년 같으면 2.4㎏들이 3통을 수확했으나 올해는 2㎏ 정도밖엔 수확하지 못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면서 “벌꿀 생산량이 줄어 가격이 올라간다는 이유로 정부에서 수입량을 늘리게 되면 농가를 두번 죽이는 일”이라며 “양봉산업이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정부가 ‘꿀벌 수입’ 외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하라”고 했다.

 

이밖에 벌이 농업의 근간이 되는 동물인 만큼 장기적으로 양봉에도 직불금 제도를 도입해 꿀벌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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