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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복 작가 에세이 24] 풍요적(豊饒的) 빈곤(貧困)시대

용석준 기자 | 기사입력 2023/03/27 [19:48]

[홍진복 작가 에세이 24] 풍요적(豊饒的) 빈곤(貧困)시대

용석준 기자 | 입력 : 2023/03/27 [19:48]



힘듦의 상징 '고개'

 

오늘도 어느 때나 마찬가지로 아침에 아파트 단지 내에 산책로를 걸었다. 산수유가 잔잔한 꽃망울을 터뜨리며 노랗게 피었다. 예나 지금이나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주는 전령사는 산수유다. 아사적삼처럼 흰 속살이 보일 듯 말듯 엷은 우유 빛에 가까운 갓난아기 살결처럼 보드로움에 더욱 사랑스럽다.

 

요즘 집사람이 발을 다쳐 밖을 나오지 못해 보여주려고 핸드폰을 꺼내 찍어 영상을 보냈다. 며칠만 더 있으면 매화 목련 개나리 진달래가 자태를 뽐내려 앞 다투어 피어날게다. 자연의 변화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인간들의 삶은 너무도 많이 변한 것 같다.

 

인간의 두뇌발달로 과학이 발달돼 삶의 질이 진화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많은 부분이 잘못된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1960대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보릿고개 시절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으로 보릿고개를 벗어나 지금의 경제강국이 되는 기반이 만들어졌다.

 

진성의 보릿고개 노래가사 일부를 불러보자.

 

아이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갯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에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보릿고개 시절 어렵고 힘들었던 정서가 잘 담겨져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많은 사람들이 부르는 인기곡이 되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면 보릿고개라 하였겠나. 높은 산에는 깔딱 고개가 있다. 숨이 깔딱거릴 정도로 힘들게 오른다 해서 붙진 이름이다. 또 피난길에 인민군에 끌려가는 남편 뒷모습에 아내는 장이 끊어질 듯한 아픔을 느끼기에 단장(斷腸)의 미아리고개, 한 많은 미아리 고개라고 노래했다. 고개를 비유해서 노는 스무고개 놀이도 있다. 스무 개의 힌트를 주면서 답을 알아맞추는 재미있는 놀이다.

 

또 삼년고개이야기도 있다. 한번 넘어지면 삼년 밖에 못 산다는 고개가 있었는데 하루는 아버지가 장을 보고 고개를 넘어 오다가 넘어져 고민을 하고 방에 누워있을 때 아들이 자꾸 넘어지면 넘어질수록 오래 살 수 있다는 기발한 생각으로 아버지를 살리는 재미난 이야기다. '고개'라는 말은 언덕이라는 뜻이지만 어렵고 힘들 때 비유해서 쓰는 말이다. 어원은 한자 쓸고(苦)에서 유추할 수 있다. 苦되다, 苦달프다, 苦생, 병苦할때 쓸고(苦)가 쓰인다.

 

고개와 비슷한 말로 언덕, 재, 嶺, 고비, 굽이 등이 있다. 우리 몸에도 고개가 있다. 머리와 몸통을 이어주는 부분으로 경동맥이 지나가고 숨구멍, 목구멍이 지나간다. 그만큼 우리 몸에서 고개는 중요한 부분이다. 잘못을 할 때도 고개를 숙이고 겸손할 때도 고개를 숙인다. 자존심이 달려있을 정도를 가늠하는 신체부위다.

 

옛말에 가난은 나랏님도 해결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가난은 한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제다. 그래서 고려시대 왕건은 흉흉한 민심을 달래려고 양곡을 나누어주는 흑창제를 실시하였고 흉년이 드는 해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가 이듬해 농사를 지으면 갚는 환곡제도로 이미 고구려 때는 진대법을 실시했다. 물론 지금은 양곡관리제도로 수급량을 조절하여 가격을 조절하기도 한다.

 

 



풍요적 빈곤시대

 

보릿고개시절은 전통적 빈곤시대였다. 6.25가 일어나기 전에 이 시기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았지만 가난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지금은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는 우리안보는 위험하기 때문에 미국에 기생하는 안보시대에 살고 있지만 당시는 이승만대통령이 나타나서 미국에 기생하는 경제로 살 수 있었다. 강냉이가루, 밀가루, 분유가루를 지원받아 살았다. 당시는 학교에서 옥수수 빵도 나누어주고 분유도 주었다.

 

앞에서 밝혔듯이 박정희 대통령 때문에 보릿고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절대적 빈곤시대는 우리나라가 원래 자원과 기술이 부족하여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에서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재벌이 잘 되도록 지원을 하면서 가난한사람들은 상대적 빈곤을 느끼게 되었다. 경제개발을 하면서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가난하던 사람들이 토지보상금을 받아 갑자기 부자가 되어버리는 상황에서 그렇지 못한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을 갖게 되었다.

 

이런 현상이 지금까지 연장되면서 풍요속의 빈곤시대가 되어버렸다. 이는 정치인의 잘못이 컸다. 정치를 잘못함으로서 부익부 빈익빈을 만들어 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가보면 없는 물건이 없이 화려하게 가득 차있다. 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일뿐이지 살 수가 없으니 그림의 떡이요. 풍요속의 빈곤을 느끼게 된다.

 

돈 있는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1년에 몇 차례씩 다니지만 돈이 없는 사람들은 밥 먹기도 힘들어졌고 젊은이들은 직장은 물론 집도 구하기 어렵고 결혼은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러니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가 어렵고 돈이 없고 살기어렵다고 하지만 도심지는 물론 교외로 나가보라. 이름난 맛집에는 음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30분 정도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시간으로 개념치 않지만 먼데서 온 사람들까지도 1시간 정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랗게 줄을 서서 기다린다.

 

이와 반대로 어둡고 추운데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오죽 먹고 사는게 힘들면 엄마들이 애기를 데리고 극단적 선택을 하겠는가? 이런 뉴스를 접할 땐 나 자신이 죄스럽다. 폐휴지 수거로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든 독거노인들은 물론 소년가장들은 가난한 집에 태어난 것에 부모가 원망스러울 게다.

 

아프리카 원주민의 기아와 질병에 힘들어하는 어린아이들은 나라와 부모를 얼마나 탓하겠나.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집과 가족을 잃고 슬픔에 빠진 사람들은 하늘을 원망하지 않겠나! 지금 80% 국민은 풍요적 빈곤시대에 살고 있다.

 

 



기아 • 전쟁 • 질병 

절제가 답이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성령의 열매 9가지를 말하고 있다.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온유, 충성, 절제. . 절제는 성령의 완전한 열매다. 절제란 어떤 일에서나 감정행동에서 정도에 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하고 스스로 제한을 하는 것을 뜻한다.

 

1970년대는 절약이 美德이었다. 학교에서는 교실 벽에 개인별 저축 막대그래프를 그려놓고 절약교육을 하였고 저축 왕을 뽑아 상을 주기도 하였다. 이 시대를 거친 70. 80대 이상 노인들은 절약과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었다. 요즘 아파트 재활용장에 가보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물건들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른다. 너무 아깝다고 말을 하지만 막상 누가 갖다가 쓰려고도 하지 않는다. 집에도 물건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TV프로에 보면 고부간의 갈등 문제가 나오는데 그중에 하나가 이 문제다. 며느리는 음식물이나 옷가지, 가구같은 멀쩡한 물건을 버리면 시어머니는 함부로 버린다고 갈등이 벌어진다. 부모세대들은 먹을 게 없어서 그랬다고 항변할지 모르나 쉰 보리밥도 찬물에 씻어서 먹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유나 달걀 같은 배달식품이 유통기간이 하루만 지나도 먹지 않고 버린다. 옛날에는 바닥에 흘린 밥알도 주워 먹었다. 젊은 사람들은 그런 것 먹으면 죽는 줄 안다. 헌옷도 얼마든지 입을 수 있는데도 그냥 버린다. 다행인 것은 아파트마다 헌옷을 모아두는 함이 있다. 여기에 헌옷을 넣어두면 이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낭비가 줄어들 것 같다.

 

이런 갈등은 부부간에도 부자간에도 빈번히 일어난다. 젊은 세대는 아낄 줄 모르고 노인세대들은 함부로 버린다고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는 소비가 일어나야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 문제는 과소비다. 과학발달이 되면서 소비를 촉진시키고 그 결과로 환경이 파괴되고 소비시대가 과소비가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경제뿐만 아니라 물질과 정신적, 성욕까지도 절제를 강조한다. 고전 9:25에 방종에 빠지지 않도록 이성으로 감정을 조절하라고 한다. 이것이 경건한 모습이고(행24:25) 성령의 열매라고 한다.(갈5:23) 우리 주변은 물론 세계적으로 가난한 나라가 얼마나 많은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치료약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전쟁과 지진으로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모습은 TV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후원금 광고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남의 일인 양 모르는체하고 흥청망청 쓰며 먹고 마시며 해외로 놀러 다닌다. 그게 모두 業報가 되는 건데 말이다. 똑똑하고 배운 자들 특히, 정치 사회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이 더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려고 남보다 더 배우고 노력한 것이 아니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 말이 틀린 말이다. 하느님은 이런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서 함께 잘 살라고 재능을 주신 것이다.

 

물론 가난한 사람을 돕는 사람들도 많으니 천만다행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를 가리켜 불이 不二고 불이 不異다. 즉 너와 내가 따로가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이것이 無我다. 지진이 일어나면 같이 죽고 홍수가 나도 같이 죽는 것인데 부자에 붙지 말고 가난한자에게 붙으라는 것이다. 내가 가난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보다 더 가난한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 있었다. 하루는 아기를 업은 젊은 엄마가 편의점에 들어와 한손에는 만원을 들고 분유통을 들었다 놨다 한 10분을 그러고 서있다. 아기는 배가 고프다고 칭얼댄다. 알바생은 이를 눈치 채고 돈이 부족해 분유를 사지 못하는 엄마 옆에 가서 분유통을 정리하는 척하다가 땅에 떨어뜨리면서 아이고, 이거는 반값에 팔아야겠네 하였다. 그러자 아기엄마는 그 분유 내가 살게요 하며 분유를 사가지고 갔다.

 

알바생은 자기 수당에서 만원을 채워 넣었다. 엄마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지혜롭게 엄마를 도와주었다. 알바를 하면서도 나보다 더 가난한 엄마를 도운 것이다. 사실 알바생은 미국재벌의 아들이었다. 재벌아들이라고 바로 본부장 시키고 바로 상무시키면 그 아들은 망하는 거다. 편의점 알바부터 하면서 고객을 알고 밑바닥부터 인생을 배우게 해야 회사를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아들은 가난한 엄마를 도우면서 기쁨을 맛보게 되는 인생을 배운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올바른 시대인가? 지금 우리는 풍요 속에 살면서 가난한 삶을 살고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메말라 있다. 풍요속의 빈곤 이 시대의 답은 절제다. 절제는 물질영역 뿐 아니라 감정 행동 정신영역에서도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는데 분노를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면 자신의 몸 내부에서 나쁜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에 각종 병이 생기는데 왜 이를 모르나? 평소의 자신의 습관이 병의 원인이 되었는데도 이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왜 나에게 이런 병이 생겼냐고 원망을 한다. 분노 중에 의분이 있다. 義憤은 의로운 분노를 말한다.

 

안중근 의사의 분노는 의분의 외침이었다. 삼일절 독립만세를 부르며 거리로 나온 많은 시민은 의분했기에 참지 못하고 밀물같이 거리로 터져 나온 것이다. 넘쳐나는 물질의 과소비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절제되어야 하고 과소비로 인한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절제되어야 한다. 분노하는 행동이나 감정도 자신의 건강을 위해 절제되어야 한다. 성령의 완전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라도 절제되어야 한다.

 

풍요적 빈곤시대에서 기아와 전쟁,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답은 절제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다.

 

홍 진 복 

(전)서울신사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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