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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샘의 홍천문화 탐방 81. 서면 어유포리 노동서원

용형선 기자 | 기사입력 2023/02/03 [09:54]

김샘의 홍천문화 탐방 81. 서면 어유포리 노동서원

용형선 기자 | 입력 : 2023/02/03 [09:54]

 

 

 

노동서원은 1744년 북방면 노일리에 노일영당(魯日影堂)으로 건립되었고 영조 24년(1748)에 문헌서원(文獻書院)에 봉안된 최충·최유선 부자의 영정을 모사하여 노일영당 정전에 봉안하였다. 1932년 서면 어유포리에 영당을 신축하고 영정과 위패를 이전 봉안하였으며 영당명칭을 '노동서원(魯東書院)' 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6.25전쟁 때 소실된 동재와 서재를 개축하고 수차에 걸친 중수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노동서원(魯東書院)은 우리나라 사학(私學)의 원조인 최충(崔冲)의 영정(影幀)과 위패(位牌), 그리고 그의 아들인 최유선(崔惟善)을 봉안(奉安)하고 있다. 최충의 12대 손인 최변이 이곳에 낙향하여 자손들이 번창하자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당을 지었다가 후에 노동서원이라 개칭되었다. 서원에 봉안된 두 분의 영정은 1628년 (영조 24)의 거작(巨作)으로서, 1984년 6월 27일 강원도 일반 동산문화재(江原道 一般 動産文化財)로 각각 등록되었으며 그 외 제기(祭器) 일체가 또한 문화재로 등록, 현재 서원(書院)에 보관되어 있다. 대지 1500평에 건평 20평의 정전(正殿)과 14평 의 동재(東齋), 서재(西齋)가 있으며 내삼문(內三門)과 외삼문(外三門)이 각각 2棟씩 있다. 정전(正殿)에는 최충과 그 아들 최유선 두 분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동재와 서재는 유인(儒人)들이 체류하며 학문을 토론하고 강론하는 곳이다. 또 유교적 전통문화 계승과 발전 을 위한 행사의 장으로도 쓰이며 특히 인근 초,중,고 학생들의 유적순례지로서 좋은 장소가 되고 있다. 본 서원은 원래 홍천군 북방면 노일리에 있던 것을 수호(守護)의 어려움으로 인 하여 1932년 5월에 이곳으로 옮겼으며 6.25동란에 소실된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일부를 개축(改築)하고 수차에 걸쳐 중수(重修)하였다. 또한 정례행사인 제향을 유림행사(儒林行事)로서 받들며 년 1회 봉제사를 올린다.

 

 

[최충 초상] 

 

[최충과 그 아들 최유선의 초상은 비단에 채색해 그린 것으로 복두를 쓰고 두 손을 가슴 중앙에 모아 홀을 들고 있는 전신입상이다.

 

 

[최충의 아들 최유선 초상] 

 

복두에서 각의 길이가 어깨 넓이 보다 길어 송대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유복이나 평상복 차림의 입상이 아닌 관복 차림의 입상 초상화로 특이하다. 특히, 영정의 뒷면에 영조 24년(1748)에 원본을 모사했다고 밝히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수령 200년 된 강원-홍천-17호 보호수인 느티나무, 1608년 향년85세로 그후 후손들이 서원을 지어 느티나무를 심고 최충선생의 뜻을 이루도록하고 문생들은 이 나무에 합격을 기원하였다 함.

 

 

 

 

※ 홍천문화재 탐방은 필자가 강원도홍천교육지원청에서 “2021 홍천 스포츠클럽 축제”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걷기 - ‘홍천 9경 어때?’ 온라인 축제하면서 남겼던 기록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혹시 왜곡되었거나 잘 못 알고 기록되어 있는 것들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수정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김샘의 홍천문화 탐방은화계초 김동성 교장이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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