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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샘의 홍천문화 탐방 75. 6·25 가리산 해병대 전투 이야기

용형선 기자 | 기사입력 2023/01/25 [08:34]

김샘의 홍천문화 탐방 75. 6·25 가리산 해병대 전투 이야기

용형선 기자 | 입력 : 2023/01/25 [08:34]

 

 

 

가리산 입구 주차장에는 가리산해병대전투전적비가 있고 가리산 정상에는 해병대 가리산 전투를 알리는 비석이 서 있다. 1951년 3월 19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간 해병대 제1연대와 북괴군 제6사단 여하 1500여 명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여 가리산을 확보함으로써 총반격에 크게 기여했던 격전지다.

 

국군과 유엔군은 오산-원주 선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저지하고 1951년 2월 하순에 반격을 개시하여 3월 14일 수도 서울을 재탈환하고, 중부전선에서는 홍천을 점령한 뒤 38도선을 돌파하기 위해 북진중에 있었다.

 

 

해병대 제1연대(연대장 대령 김성은)는 영덕, 영주, 영월지구에서 적을 격퇴하면서 전진을 계속하여 경춘가도까지 진출한 해병대는 3월 16일 제3군단 지역을 떠나 제9군단 미 해병대 제1사단에 작전 배속되어 3월 17일 18:00시에 평창군 차항리를 출발 3월 18일 17:00시에 홍천에 도착하였고 19일에는 전 부대가 구성포리에 집격하였다.

 

홍천지구에서 해병대 제1연대에 부여된 임무는 일대에서 가장 험준한 가리산을 공격, 탈환함으로써 우군이 북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가리산은 홍천.춘천.인제를 잇는 삼각혐의 중간에 있는 1051고지 군으로 이 고지를 탈환하면 인제와 춘천을 감제할 수 있는 전략요충지로 적은 이 가리산 일대에 최강 부대인 인민군 제6사단 1,500여 명으로 방어하고 있었다.

 

[홍천 가리산 전투에서 부상당한 미군이 헬리콥터로 후송되는 모습, 홍천군청 홈페이지에서]

 

한편, 해병대 제1연대는 가리산을 탈환하기 위하여 3월 19일 야간 “물새터”에 연대 지휘소를 설치하고 제2대대(대대장 중령 엄봉생)는 우, 제3대대(대대장 소령 김용국)는 좌, 제1대대(대대장 소령 공정식)를 예비로 하여 공격작전을 감행하였다.

 

해병대 제1연대는 1951년 3월 19일부터 3월 25일까지 7일 동안 치열한 주,야간 공격을 통하여 국군과 유엔군의 총반격 작전시 미 제9군단 진격의 걸림돌인 가리산을 점령함으로써 우군의 중부전선 돌파구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1951. 3. 19. ~ 1951. 3. 25.까지 7일간 전투에서 상사 백조연(군번 8104245) 등 32명이 전사하였고 적 121명을 사살하고 39명을 포로로 붙잡았다.

 

가리산 전투에서 전사한 32명의 국군용사들의 명복을 빌며 다시는 이런 민족상잔(民族相殘)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길 빌어보며 가리산 이야기를 마무리 해 본다.

 

※ 홍천문화재 탐방은 필자가 강원도홍천교육지원청에서 “2021 홍천 스포츠클럽 축제”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걷기 - ‘홍천 9경 어때?’ 온라인 축제하면서 남겼던 기록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혹시 왜곡되었거나 잘 못 알고 기록되어 있는 것들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수정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김샘의 홍천문화 탐방은화계초 김동성 교장이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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