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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새 우는 비무장지대(DMZ)

이은희 기자 | 기사입력 2022/12/04 [21:53]

으악새 우는 비무장지대(DMZ)

이은희 기자 | 입력 : 2022/12/04 [21:53]

 

 

 

 

남쪽에서 아지랑이 일궈낸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총부리 겨누고 살벌하게 대치하고 있는 이곳도 꽁꽁 얼었던 땅이 풀리고, 민들레 쑥부쟁이 갯버들 등의 초목들이 앞 다투어 얼굴을 내미는 봄이 오는가 하면, 북쪽에서 찬바람이 처내려오면 상고대 서리꽃피고, 엄동설한겨울이 찾아오는데, 추위에 얼어버린 달이 한 서린 서릿발 빛으로 밝혀주는 평화로운 밤 비무장지대에서는 으악새가 슬피 운다.

 

동아시아 자락 반도에 대한민국은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한민족의 국가로서 한때 국력약화로 나라까지 빼앗겼다가 국제정세에 힘입어 어렵사리 광복을 맞이했으나, 광복을 시켜준 국가들에 의해 반도 정중앙인 3.8도선을 기준하여 남과 북으로 나누어지게 된 분단국가가 되어야 했다.

 

북쪽을 차지한 김일성이 6.25전쟁을 일으켜 남침하였고. 준비 없던 국군은 낙동강까지 후퇴를 하다가 유엔군의 참전으로 북진하여 전 국토 탈환을 목전에 두고 침략군에 참전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다시 밀리고 전진을 반복하며 쌍방에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한 뼘의 땅이라도 더 빼앗으려는 땅뺏기전쟁은 휴전이 발효되는 시각까지 치열했었다.

 

6.25전쟁은 1953년 7월 27일 발효된 정전 협정에 따라 해당 시점에서 교전이 멈춘 지점을 휴전선으로 설정하고, 임진강에서 동해안까지 약 240km 거리를 군사분계선으로 설정했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2km 거리를 두고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비무장지대가 설정되었다.

 

비무장지대(DMZ)는 국제 조약이나 협약으로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가 원칙적으로 금지된 곳을 말한다. 우리 민족 분단의 역사를 상징하는 지역으로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기도 한데 많은 사람들이 허리가 아프다고 하는 까닭이 우리나라 허리부분이 휴전선이고 비무장 지대라서 군사적 충돌로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산하로 보이지만, 지난날 6.25전쟁은 민족상잔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이역만리 잘 알려지지도 않은 나라전쟁에 평화를 위해 참전했던 세계 여러 나라 젊은이들이 전장에 이슬로 갔는가 하면, 민족해방전쟁이라는 거짓명목으로 나이어린 소년까지 큰 군복을 입혀 조선인민군으로 내몰아 전장에서 어머니를 부르며 숨져갔는가 하면, 중공군은 무기나 의복도 제대로 가추지 못하고 참전하여 인해전술로 명분도 없는 개죽음을 당한 땅뺏기 병정놀이에 죽어간 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곳이 지금의 비무장 지대일 것이다.

 

비무장 지대는 작전상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해마다 화공작전을 하여 시야를 가리는 나무는 없고 넓게 펼쳐진 공동경비구역에는 억새나 갈대 달뿌리풀 들이 길길이 자라 꽃대를 밀어 올려 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는 은빛머리갈퀴를 흩날리며 달빛 고운 밤 파도같이 일렁일 때마다 으악 새 ‘서럭서럭’ 슬피 운다.

 

땅빼앗기 전쟁의 포화로 산은 낮아지고 수많은 죽음과 상처에 피가 흘러 깊어진 강, 빼앗은 땅이나 빼앗긴 땅 사이에 휴전선을 그어놓고 만들어 놓은 적의 땅도 우리 땅도 아닌 공동감시구역인 비무장지대에도 봄은 찾아와 폐허의 산하를 치유하길 어언 반세기가 더 흘러갔으며, 언제나 팽팽한 긴장 속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포화를 감추고 사상과 이념을 달리하고 반대방향으로 70여년을 달려갔으니 그 벌어진 간격은 한 세기하고도 반이 넘는 차이로 벌어지고 멀어졌다.

 

적과 아군이 대치하고 있는 남북방한계선에는 서로가 철책으로 높이 막아 짐승들마저 서로 넘나들지 못하는 공동경비구역은 말이 비무장 지대이지 언제나 도발을 일삼는 북한군의 정전협정 위반으로 중무장지역이다.

 

세계전쟁역사상 70여년을 휴전하고 있는 분단국의 아픈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편지조차 전할 수 없고, 전 세계가 통화권인 최첨단 휴대전화도 이산가족들과 통화할 수 없는 이 상황은 휴전선과 비무장 지대가 만들어진 일촉즉발의 평화 속에 또 하나의 아픈 현실이다.

 

하지만 남과 북이 똑같이 내어놓은 공터 비무장지대 안의 평화는 자연이 지키고 자연이 키우는 천연의 보고다.

 

비무장지대 GP에서 70년대에 군복무를 하며 겪었던 일들 중에 지난날 이 평야지대 천석꾼의 집터에는 주인은 곧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면서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을 것이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마을은 전쟁의 포화로 모두 사라지고 집터의 흔적만 남아있었는데, 지금까지도 뒷마당에 살구나무가 고향의 봄을 부르며 꽃피고, 장독대 섬돌 옆으로 꽈리가 가을빛에 하트모양 열매가 붉게 익어 가는데, 열 칸이 넘는 방마다 구들장 밑에는 오소리 가족들이 옹기종기 방을 만들고 까만 눈을 굴리며 내려다보는 사람을 경계하는데, 이제 사람이 돌아왔으니 방을 빼야하나 하며 걱정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듯 했다. 또한 달 밝은 밤에 GP벙커에서 손 망원경으로 내려다보면 멧돼지 가족이나 고라니 들이 먹이를 찾아 뛰어다는 모습을 수시로 볼 수 있는데 군사분계선을 넘나들 때 남쪽으로 와서 있는 것들에게 애정이 가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애국심이었다.

 

내가 비무장지대를 떠나 온지도 어언 50여년이 지나가지만, 지난 70여 년간 자연 상태로 생태계가 되살아났다. 멸종위기의 야생 동물이나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어 생태적 연구가치가 높다. 또한 비무장 지대,이제는 남북이 서로 교류하고 공유하는 공간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생태계를 공동으로 보존하고 관리하며, 문화 유적을 함께 조사하거나 물 자원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등 남북 간 협력이 가능한 곳이다.

 

격화된 전쟁을 잠시 멈추고 대화로 풀어가려는 노력이 휴전이다. 그 휴전을 지키기 위해서 평화구역을 만든 것이 비무장 지대다. 비무장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 평화의 땅, 이제 제대로 된 평화의 땅을 만들고자 쌍방이 노력해야 한다. 거창하게 남북통일을 하자고 외치기보다는 먼저 쌍방이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선정하여 여기서 만나고 축제도 벌리고, 전 세계인들이 관광할 수 있게 DMZ평화공원을 만들어 개방하도록 하여 평화의 전진기지로 해야하는데 북한이 핵으로 일관하니 통일은 요원하고, 으악새만 서럭서럭 울어댈 비무장지대 기나긴 겨울이 우울하다.

 

석도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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