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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이디오피아의집의 추억

김동성 기자 | 기사입력 2022/10/01 [02:59]

춘천 이디오피아의집의 추억

김동성 기자 | 입력 : 2022/10/01 [02:59]

 

 

 1981년 필자는 춘천에 있었다. 당시 공지천에는 커피점 ‘이디오피아의집’이 있었고 원두커피의 명성이 자자해 토·일요일에는 자리가 없어 바닥에 앉아 커피를 마실 정도였다. 이디오피아의집에서 미팅을 하거나 맞선을 보면 사랑이 이뤄질 확률이 높다는 소문으로 전국 각지에서 이곳을 찾았다.

 

이디오피아의집이 문을 연 것은 1968년 11월 25일. 그 해 5월 19일 6·25 전쟁 참전국 에티오피아 하일레 슬라세 1세 황제는 참전기념비 제막을 위해 춘천을 찾았다. 황제는 다시 한국에 방문할 것을 약속하며 박정희 대통령에게 황제의 쉼터이자 에티오피아 문화를 알리는 장소로 에티오피아기념관 건립을 요청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용이(82)·김옥희(80)씨 부부가 사재를 털어 황제가 앉았던 자리 인근에 건물을 짓고 이름을 이디오피아뱃(집)이라 하였다.

 

 

이디오피아의집이 문을 열자 황제는 ‘이디오피아벳(집)’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현판을 보냈다. 또 개관을 축하하며 에티오피아 황실 커피 생두를 외교행랑을 통해 보냈다. 커피 원두 공급은 에티오피아가 공산화된 1974년까지 이어졌다. 조씨 부부는 주한 에티오피아영사관을 찾아가 생두 볶는 방법을 배웠다. 마땅한 기구도 없어 프라이팬에 볶고 고춧가루 만드는 원리를 차용해 원두커피를 만들었다고 한다.

 

 

문전성시를 이루던 이디오피아집은 1990년대 후반부터 쇠락의 길을 걸었다. 조씨 부부가 나이가 들면서 힘이 부쳤기 때문이다. 이를 안타까워한 조씨의 둘째 딸 명숙(51)씨가 이탈리아에서 의사를 하던 남면 차중대(52)씨를 설득해 2009년 이디오피아의집 운영을 맡았다. 이들은 벽화를 그리고 외벽을 짙은 갈색으로 칠하는 등 이디오피아의집을 새롭게 단장했다.

 

 

‘강둑길’이라 지어진 새 주소를 ‘이디오피아길’로 바꾼 것도 이들 부부라고 한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한 6.25전쟁 지상군 파병국으로, 3,518명 파병(121명 전사, 536명 부상)하였으며 우리 정부는 2021년 6.25전쟁 유엔참전용사 마스크 지원의 일부로서, 에티오피아 생존 참전용사 및 가족 등에게 마스크 4만장 전달하기도 했다.

 

동아프리카에 있는 이디이피아는 굶주린 아이들과 라이브 에이드(Live Aid: 반창고를 뜻하는 Band Aid에서 따와서 난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다. 이디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로, 독립을 위해 투쟁한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는 국민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7세기경 이슬람으로 변모한 주변국가와 달리 평범하지 않은 기독교 정교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이디오피아, 에디오피아 등 다양한 표기가 혼용되었으나 1986년부터 에티오피아가 표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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