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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샘의 홍천문화 탐방 29. 수타사-서곡대사(瑞谷大師) 사리탑비명(舍利塔碑銘)

김동성 기자 | 기사입력 2022/09/21 [08:14]

김샘의 홍천문화 탐방 29. 수타사-서곡대사(瑞谷大師) 사리탑비명(舍利塔碑銘)

김동성 기자 | 입력 : 2022/09/21 [08:14]

 

조선국강원홍천현공작산수타사서곡당대선사사리탑비명병서(朝鮮國江原洪川縣孔爵山水墮寺瑞谷堂大禪師舍利塔碑銘幷序)

 

대광보국숭록대부령중추부사(大匡輔國崇祿大夫領中樞府事) 김상복(金相福) 찬(撰)하다.

 

통정대부전행공조정랑( 通政大夫前行工曹正郎) 김상숙(金相肅) 글과 전서를 쓰다.

 

불교를 배우는 사람 재명(再明)이 법호(法號)가 찬윤(粲潤)인 스승 서곡대사(瑞谷大師)의 융행(戎行)을 문서로 적어 나에게 와서 보고 사리탑비문(舍利塔碑文) 짓기를 구하였다. 그가 말하길, “저의 스승이 입적하시자 삼일 동안 빛을 발하였고, 다비를 하자 두 과의 사리(舍利)와 한 개의 초골(超骨)이 나와 사람에게 보여주니 괴이하게 여겼습니다. 이것은 글을 지을 수 있습니까?” 말하길, “세상의 스님이 죽어서 화장을 하면 종종 이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또 그가 말하길, “근세에 사안(思岸) 장로(長老), 담월(潭月) 각혜(覺惠), 관파(寬坡) 두옥(斗玉), 기성(箕城) 쾌선(快善), 만화(万化) 원오(圓悟) 등과 같은 대여섯 선사가 있어서 저의 스승이 찾아뵙고 법(法)을 받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글을 지을 수 있습니까?” 말하길, “세상을 벗어난 학인[出世之士]이 사방을 구름처럼 다니며 여러 스승을 찾아가 묻는 것은 진실로 떳떳한 것입니다.” 재명(再明)이 말하길, “저의 스승은 명산(名山)을 조금 유람했으며 시냇물로 목축이고 나무 열매를 먹었으며, 불경에 널리 통달하여 좋은 인연으로 널리 교화시켰습니다. 만년에 이르러 교학을 버리고 선(禪) 수행으로 돌아가 명리(名利)를 더럽게 여기고 사물과 나를 같이 보며, 괴롭고 적막함을 편안히 여기고 깊고 고요함을 즐거워하며, 본모습을 숨겨 뒤섞이고 따르며, 덕을 가리고 빛을 감추며 생을 마쳤습니다.” 말하길, “아! 이것은 글을 지을 수 있습니다. 내 들으니 불교의 도에는 선(禪)이 있고 교(敎)가 있는데, 대개 모두 조사(祖師)의 법(法)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도로써 논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깨닫는 것을 먼저 한 후에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있습니다. 내 보건대 세상에서 말하는 대교사(大敎師)는 무리를 많이 모으고 좌석에서 이야기하며 경전의 뜻을 연설하는데 하루 종일 열심히 하며 쉬지 않습니다. 그 본마음을 살펴보면 완고한 뿌리가 진흙에서 헤매고 있고, 없앨 수 없는 자가 진실로 큰 지혜가 있다고 하는 것이 많습니다. 이른바 한 맹인이 뭇 맹인을 이끌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태양의 밝음은 구름과 안개가 덮으면 빛을 어둡게 하지만, 구름과 안개가 엷어지면 빛을 새게 하고, 구름이 없어지고 안개가 걷히면 태양은 다시 밝아집니다. 지금 선(禪)을 배우는 것은 아마도 이것과 같을 겁니다. 빛을 어둡게 하는 것은 빛을 새게 하는 것만 못하고, 빛을 새게 하는 것은 빛을 회복하는 것만 못합니다. 비록 빛을 회복할 수 없더라도 빛을 새게 하는 자는 진실로 빛을 어둡게 하는 자 보다 낫습니다. 탑을 세우고 경전을 강하는 공덕이 없으나, 좌선하여 마음을 깨달아 곧바로 길을 가리키니 당신 스승과 같은 자가 참으로 배우는 것을 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하니 명산을 유람하며 여러 스승을 찾아가 묻고 나타난 발 뒤를 따르는 사리자(舍利子)가 과연 참된 종자(種子)겠습니까? 이것은 명(銘)을 지을 수 있습니다. 삼가 살펴보니 대사의 속성은 김씨(金氏)고 본관은 경주(慶州)며, 아버지는 업상(業尙)이고 어머니는 완산이씨(完山之李)다. 이씨의 나이가 거의 49이 되자 부부가 관음(觀音)에게 기도하니 품으로 별이 떨어지는 꿈을 꾸고 잉태하여 대사를 낳았다. 임오년(壬午年) 3월 17일 축시(丑時)에 태어났고, 무자년(戊子年) 11월 3일 사시(巳時)에 홍천 공작산 수타사에서 입적하셨으니 법랍이 51세다. 다음 해인 기축년(己丑年) 봄에 불도 재명(再明) 등 백여 명이 사리(舍利)와 초골(超骨)을 수타사에 탑 세워 봉안하고, 사리 한 과를 봉복사(鳳腹寺)에 탑 세워 봉안하였다. 봉복사는 대사가 늘 지내던 곳이다.

 

명(銘)에 이르길,

내 마음에 얻은 것 있으면 / 我心有得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있고 / 可以悟人

내가 마음에 얻은 것 없으면 / 我無心得

설법이 참되지 않네 / 其說不眞

이 때문에 옛 불교는 / 是以古佛

선(禪)을 먼저 교(敎)를 뒤로 했네 / 先禪後敎

아! 서곡 대사는 / 嗚呼瑞釋

이것을 본받았네 / 其是之傚歟

숭정(崇禎) 기원후(紀元後) 삼기축(三己丑) 7월 일 세우다

 

[서곡대선사 사리탑비-원문] 

 

※ 홍천문화재 탐방은 필자가 2021년 홍천문화원에서 운영하는 마을관광해설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역사적 사실, 강의에서 논의되었던 내용, 현장답사를 하면서 남겼던 기록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혹시 왜곡되었거나 잘 못 알고 기록되어 있는 것들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수정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서곡대사(瑞谷大師) 사리탑비명(舍利塔碑銘)은 너브내역사문화연구회 권혁준 자문위원님이 탁본을 떠 번역한 내용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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