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유일한 보물 ‘홍천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 원형복구 시급홍천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동원우 연구위원"보물 제540호인 홍천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의 중요한 기단부 중 하층기단 저석과 면석일부가 땅에 파묻혀 석탑의 원형을 찾을 수 없고, 삼층석탑의 안내판 설명도 일부 잘못 표기됐다."
이탑은 본래 홍천군 두촌면 괘석리에 있었으나 1969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보물 제54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초기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 역사학자 정영호 선생은 고려초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많은 연구자들이 이를 인용하고 있다.
사사자 삼층석탑은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과 북한 금강산 금강암지에 있는 사사자 삼층석탑 단 2개만 확인돼 남한에서는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이 유일하다. 그러므로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의 학술적 가치는 매우 크며, 석탑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에 의해 논문에서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고려석탑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논문 및 학술지에 홍천 사사자석탑의 기단부 중 하층기단의 양식에 관한 연구는 선학들의 연구와 사진자료를 통해서만 설명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홍천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에 관하여 기술한 연구논문을 보면D대학원석사논문에서는 “지대석과 하층기단의 기대는 노출되지 않고, 면석부터 지반에 노출되고 있다.” 그리고 K대학논문은 “지대석과 하층기단의 하대저석 부분은 파묻혀 보이지 않지만”, . . . H대학 논문에서는 “현존 상태에서는 지대석과 하층기단의 기대는 지상에 노출되어 있지 않으며, 하층기단의 면석부터 지상에 노출되어 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하층기단의 기대가 노출되지 않고 파묻혀 있는 하층기단에 대한 연구자들의 표현은 정영호 선생께서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마흔(磨痕)이 보이나 대체로 원형을 잘 간직한 완형으로 형태도 정연하고 우작(優作)이다”라고 평가한 석탑의 완형형태와 특히 ‘간략화된 하층기단’의 양식을 확인하기 위하여 홍천에 오는 연구자들에게는 실망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문화재 관리부재는 홍천의 문화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사진과 같이 하대 저석은 땅속에 다시 묻히고 일부 하대면석을 받치는 낮은 각형 괴임석 일부만 노출시켜 완공하였으며 보고서의 원형의 복원이라는 기록은 허황된 기록으로만 남게 됐다.
최근 2020년 9월 7일 홍천군은 미술관 앞에 있는 삼층석탑 및 사사자 삼층석탑 내에 배수공사를 마쳤다. 그런데 사진과 같이 하대갑석과 면석일부를 제외하고는 전혀 볼 수 없게 공사를 완료하고 사진과 같이 바닥에 자갈을 깔아 놓아 자갈만큼의 요철로 하층기단의 시야를 막고 있다.
홍천의 보물인 사사자 삼층석탑의 이러한 모습은 마치 사람의 신체일부인 발목을 흙에 파묻고 신체의 전모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을 터인데 주무부서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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